“‘門(문)’ 자의 옛 모습은 문의 형상이다. 문을 열려면 두 손을 이용해야 하는데 ‘열다, 시작하다’는 뜻의 ‘開(개)’ 자에서 이런 동작을 찾아볼 수 있다.어떤 사람이 재빨리 문 밖으로 나갔지만, 그 사람의 두 다리가 살짝 보인다. 이렇게 사라진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날쌔게 피하다’의 뜻을 가진 ‘閃(섬)자이다.”
‘한자왕국’은 한자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한자의 기원과 중국문화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쓰고 읽기 어려운 문자체계인 한자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 갑골문 시대부터 현대까지 중국문화사를 한자의 형성 과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門’의 형상과 변형을 1229년에 만든 쑤저우(蘇州) 성의 지도에서 확인하는 이 책의 설명 방식은 독특하다. ‘
禾(화)’ 자는 ‘벼’를 이르는 게 아니라 벼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의 야생 ‘조’라는 해석이나, 북을 뜻하는 ‘鼓(고)’의 전신을 추적하면서 북의 변천사와 ‘鼓’자의 변천을 함께 대비시키는 대목 등 저자의 관찰은 흥미로운 데가 있다.
저자는 ‘禾’를 ‘조’로 번역해야 옳다고 주장한다. 이 글자가 만들어진 지역에서는 수천 년 동안 조가 주요 식량작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나라 때의 금문에서 ‘鼓’자의 북을 나타내는 모양이 높은 받침대 위에 올라 있는 까닭은, 북이 놓이는 위치가 점점 높아졌고 위치가 높아질수록 치기가 편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이 책은 ‘술과 술그릇’, ‘책과 악기’ 등 14개의 주제로 한자를 묶고, 중심이 되는 부수를 동심원으로 삼아 관련된 여러 한자를 설명했다. 나무 목(木)자를 설명하면서 수풀 ‘林(림)’부터 과일 ‘果(과)’자까지 글자의 유래와 변천을 해설하는 식이다.
저자는 스웨덴 출신의 중국 전문가로, 발로 현장을 누비며 상상력을 함께 동원해 이 책을 썼다. 고대 중국인들의 일상생활과 글자들을 탄생시킨 자연환경을 연결시킨 끝에 저자는 한자의 형상이 수천 년 동안 반복해 나타난 원형(原型)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현지 조사와 사진 촬영을 통해 ‘한자의 오늘’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글자의 변천에서 문명사의 궤적을 읽어내는 발상이 흥미롭다.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지음·김하림 등 옮김 청년사 발행ㆍ 1만8,000원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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