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슛팅 라이크 베컴’(감독 거린더 차다)은 축구에 미친 소녀들의 풋풋하고 유쾌한 축구 입문기이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축구냐, 공부냐’를 고민하는 두 소녀의 모습이 퍽 재미있게 다가온다.“살짝 태클을 피한 베컴, 미드필드를 헤집고 센터링…. 아, 골입니다. 멋진 헤딩슛!” 제스(파민더 나그라)는 축구 중계를 볼 때마다 영국이 낳은 천재 미드필더 베컴과 한 몸이 되어 공상 속에서 그라운드를 누비는 소녀.
벽마다 온통 베컴 포스터로 도배를 할 정도로 축구 마니아다. 남자들과의 동네 축구에서도 그녀는 단연 돋보인다.
제스가 공을 몰 때 감히 누가 그녀의 볼을 뺏으랴. 현란한 드리블은 호나우두를 뺨치고, 상대방을 제치는 날렵한 페인트 동작은 베컴을 울릴 정도다. 제스는 곧 줄스가 속한 여자 축구팀의 눈에 띄게 된다.
제스의 출중한 실력을 알아본 또래 줄스(키이라 나이틀리)가 여자 축구팀에 입단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을 한 것. 축구화 하나 변변한 게 없어 빌려야 하는 처지이지만,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뚫고 나오는 법이니까.
제스는 축구선수 출신 코치 조(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의젓한 축구선수로 성장한다.
하지만 인도식 전통에 굳게 얽매여있는 부모님 그리고 대학입시가 제스의 발을 옭아죈다. 영국 내 인도 사회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제스의 재능을 덮어 누른다. 터번을 두른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은 잔소리만 해댄다.
여자 어른들은 틈만 나면 ‘여자는…여자는’ 을 입에 붙이고 다닌다. 제스만 그런 처지가 아니다. 줄스 또한 ‘여자답게 굴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짜증난다.
집안의 줄기찬 반대에 맞서 제스는 거짓말을 하고 독일 원정 경기에 나섰다가 신문에서 딸의 기사를 읽은 아버지 손에 붙잡힌다. 이제 꼼짝없이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제스.
아버지는 하키 선수로 뛰던 젊은 시절에 유색 외국인 선수로서 받았던 수모를 딸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각오다. 여기에 제스와 코치 그리고 줄스의 삼각관계가 제스에게 거친 ‘태클’을 건다.
과연 제스 선수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영화의 재미는 제스와 줄스가 기지를 발휘해가며 집안 어른들의 ‘태클’을 피해가는데 있다. 제스의 언니가 결혼할 때 열리는 시끌벅적하면서도 관능적인 인도식 결혼 피로연, 화려한 전통의상 사리 등 ‘인도적’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독특하다.
제스와 줄스 역의 배우들이 집중적인 축구 수련을 받고 수준높은 아마추어급 실력을 뽐냈다. 1986년 월드컵 득점왕인 추억의 축구 스타 게리 리네커와 베컴이 깜짝 출연한다.
원제(Bend it like Beckham)와 번역 제목이 조금 다른데, ‘Bend’는 베컴의 전매특허인 크게 휘어지는 슈팅을 말한다. 베컴의 슛처럼 멋지게 휘어진다는 뜻과, 소녀들이 역경을 멋지게 우회해서 목표에 도달한다는 뜻을 다 담고 있다. 제6회 부천영화제 개막식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30일 개봉.12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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