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불만이 양념처럼 배어 있는 단란한 가정. 코니 섬머(다이앤 래인)는 이런 삶을 살았다. 30대 중반의 그녀는 결혼 11년차로 뉴욕 교외에 살고 있다. 그러나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그녀는 맨해튼으로 쇼핑을 나갔다 넘어져 무릎이 까진다.그녀와 부딪친 남자 바텔(올리비에 마르티네즈)은 집에서 치료를 해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애타게 부르던 빈 택시가 나타난 순간, 그녀는 그걸 외면하고 남자 집으로 들어섬으로써 인생에 난해한 숙제를 자청한다.
‘코튼 클럽’에서 도도한 아름다움을 보였던 다이앤 래인은 마치 카트린 드뇌브처럼 아름답게 나이를 먹고 있다. 이 아름다운 여성을 치명적인 유혹에 던짐으로써 애드리안 라인 감독은 ‘언페이스풀(Unfaithful)’에서 유혹의 마력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를 유혹한 것이 감미롭기로 소문난 프랑스인이라는 점도 뜨거운 영화를 기대하게 한다. 두 사람은 문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도 참지 못해 현관에서 정사를 벌이기도 하고, 바텔은 코니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카페로 쳐들어가 화장실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방점은 두 사람의 불륜이 아니라 남편 에드워드(리처드 기어)와의 사랑에 있다. 신뢰(Faithful)와 불신(Unfaithful)은 그저 접두사 하나 차이라는 듯, 그래서 더 중요한 문제는 두 사람이 함께 한 시간의 사랑이라는 듯, 감독은 부부를 또 다른 위기로 몰고 가 두 사람을 공범으로 만든다.
불륜을 눈치 챈 에드워드가 바텔을 죽인 후 아내가 살인범으로 의심받는 상황을 연출하고, 결국엔 두 사람이 함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설정함으로써 한 때의 유혹에 빠졌던 아내를 구원하는 것은 오래 산 남편이라는 사실을 설교한다.
10년전만 해도 정부 역할을 맡았을 리처드 기어가 묵직한 중년의 남편으로 나왔듯, ‘나인 하프 위크’ ‘위험한 정사’에서 보였던 일탈적 유혹에 대한 찬미는 더 이상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것이 아니다.
바텔이 흔하디 흔한 유부남 바람둥이로 밝혀지는 것도, 특히 그의 불어식 영어 발음이 그저 이국적인 풍물로 보여져 두 사람이 그저 육체적 쾌락을 탐할 뿐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유혹도 보여주고, 가정의 화목도 그리는 양수겹장의 전략이 포스터만 보고도 ‘화끈한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어떻게 비칠 지는 미지수.
리처드 기어와 다이앤 래인이 함께 출연한 것은 84년 ‘코튼 클럽’(프랜시스 코폴라 감독) 이후 처음이다. 22일 개봉. 18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