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순탄한 회복을 강조해 온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 미 최고위 경제 정책 결정권자들 사이에서 향후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한 달 전까지 올 연간 최대 3.75%의 성장률을 전망하며 경기 회복을 믿었던 FRB는 13일 정책 기조를 ‘경기 둔화 우려’로 바꿨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날 열린 경제포럼에서 이례적으로 미국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린스펀, “경제 둔화 위험이 높아졌다”
FRB는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현재 연 1.75%인 연방기금 금리를 현행대로 유지키로 결정했다. 금리 유지는 다수가 예측했던 일이라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핫 뉴스’는 다른 대목에 있었다. 기업 회계 부정으로 투자 신뢰가 실추되고 주가가 폭락하는 동안에도 낙관론을 펴 온 FRB가 경기 둔화의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5개월 만에 경제 전망을 수정한 것이다.
FRB는 발표문에서 “가까운 장래에 가격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라는 장기 목표, 또 현재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반해 경제가 둔화할 수 있는 위험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그 배경으로는 회계 부정으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과 불투명한 소비 개선을 들었다 또 최근 발표된 2ㆍ4분기 성장률 추정치가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1.1%에 그친 데다 제조업 투자나 실업률 개선 가능성이 미약한 것도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발표로 9월 금리 인하설에 무게가 실리긴 했지만 호재만 바라고 있던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가뜩이나 ‘더블 딥’(경기 재 하강) 경고에 위축된 뉴욕 증시는 FRB의 발표 직후 나스닥 지수가 2.8% 떨어진 것을 비롯해 다우 존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가 모두 2% 이상 하락했다.
■부시, “우리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미국 경제의 견고한 펀더멘털을 줄곧 강조해 온 부시 대통령도 이날 텍사스주 웨이코의 바일 대학서 열린 경제포럼에서 “우리는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으며 지금은 어느 정도 어려운 시기”라고 말해 단기적으로 미 경제가 불확실함을 시인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미 경제의 건전성을 확신하다”며 여전히 낙관론을 잃지 않았다. 그는 미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정부가 장기적인 경제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포럼에 참석한 40개 주의 기업 경영자들과 노동조합 대표, 경제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 최대 온라인 증권사 찰스 슈왑의 찰스 슈왑 회장은 “지금 증시는 내가 겪은 최악”이라며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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