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이 발표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이렇다. 서울은 전세금 1억6,000만원까지, 과밀 억제권역은 1억2,000만원, 광역시는 1억원, 기타 지역은 9,000만원까지 보호 대상으로 한다. 법 적용 시기인 11월 1일 이전에 계약한 임차인은 보호대상이 되지 않으며 임대료 인상률은 12%로 제한한다.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입장은 그 동안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내용과 크게 어긋난다. 무엇보다 전세금 상한선이 비현실적이다. 이 정도의 전세금만 보호한다면 결국 변두리 지역의 상가만 보호하게 될 것이다.
서울 지역의 도로변에 있는 대부분의 임대료는 평당 700만원 이상이며, 상권이 발달한 큰 길가는 1,000만원 이상이다. 이 법령에 따르면 이면도로 주변의 23평 이상, 대로변의 16평 이상의 점포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어디 그 뿐인가. 임대료 인상률 12% 제한은 물가상승률과 비교할 때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연간 지가(地價) 상승률은 3% 미만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에 불과하다. 주택의 임대료 증액을 5%로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가 임대료 인상률 12% 제한은 ‘인상 제한책이 아니라 인상 보장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소액 임차인들의 최우선 변제금액도 주택임차인과 형평에 어긋난다. 서울의 임대료 4,500만원 이하는 그 30%선인 1,350만원까지 순위에 관계없이 최우선적으로 변제하도록 하였으며, 나머지 지역도 차등을 주어 소액 임차인보호제도를 시행한다.
그러나 주택의 경우 서울 등 과밀 억제권 지역에서 4,000만원 이하는 그 40%선인 1,600만원까지 최우선 변제하고 있다. 주택의 경우도 그 최우선 변제금액 비율을 높여야 하거니와 최소한 상가 임차인들의 최우선 변제금액을 높여야 한다. 주택이나 상가나 모두 그 보증금은 귀하고 아까운 서민들의 돈이 아닌가.
가장 심각한 내용은 11월 1일 시행 이후 계약한 임차인만 보호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수많은 건물주들은 이미 올릴 것 다 올리고 계약할 것 다함으로써 임차인들을 울리고 있다는 보도가 수없이 나왔다.
최근까지 계약한 수많은 임차인들을 모두 전세금액을 불문하고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이러한 악덕 건물주들을 보호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그 전부터 전입 신고한 임차인을 보호하였듯이 전부터 사업자등록증을 걸고 그 자리에서 영업해 온 임차인들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 나라의 상가 임차인들은 어림잡아 4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민의 정부’라고 하는 이 정부가 이 많은 상가 임차인들을 팽개쳐 버렸다. 그러고도 과연 ‘국민의 정부’라고 할 수 있는가? 국회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의 압력과 눈치 때문에 시행 시기를 한참 뒤로 늦추는 바람에 건물주들에게 임대료를 대거 인상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대통령 후보들이 ‘민생 투어’를 하고 ‘민생 입법’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말은 결국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상가 임대차보호법보다 더 중요한 ‘민생 입법'이 어디에 있는가?
어제도 오늘도 국민의 귓전에 들려오는 것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 공방이다. 물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라면 따져야 한다.
그러나 이미 검찰에 그 사건이 넘어 가 있고 제보할 내용이 있다면 검찰에 제출하면 된다. 그 동안 검찰이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수사가 불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그런데 여야는 경쟁적으로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은 헷갈릴 뿐이다. 진정으로 국민의 표를 얻으려면 그렇게 죽기살기로 싸움만 할 것이 아니다. 누가 더 민생을 챙기고 민생 입법을 올바르게 챙기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당장 상가 임대차보호법과 그 시행령을 제대로 만들어라.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