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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 '!느낌표' 독서는 없고 책을 희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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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 '!느낌표' 독서는 없고 책을 희화화

입력
200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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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김화영 '문학동네' 가을호서 비판“각종 매스미디어가 앞다퉈 시시각각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의 저변에 깔린 경제 일변도의 시각, 나아가서 100만부를 훨씬 상회하는 몇몇 서적의 판매고는 거의 백지에 가까울 정도로 판단력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상업광고와 출판조작의 효과와 위력 그리고 독서의 맹목적 편중현상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케 한다.”

평론가 김화영(60) 고려대 교수의 말이다. 우리 독자들의 지독한 독서 편식을 꼬집으면서, 이 괴상한 취향의 원인으로 교육 제도의 파행과 함께 여가 시간을 유괴하는 TV를 꼽았다.

그는 특히 MBC의 ‘!느낌표’라는 오락 프로그램 중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책 소개 코너라를 “근래에 목격한 가장 기이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에 ‘아포스트로프의 어제와 느낌표의 오늘’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느낌표’ 책 소개 코너의 지나친 오락성을 비판하고 프랑스 TV의 독서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와 비교한 것이다.

독서계는 그래도 지금까지는 ‘느낌표’의 문제점보다는 계몽적 효과에 무게를 두어왔다. 그에 비하면 김씨의 비판은 본격적이다.

그는 특히 느낌표의 진행자들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무지(실제의 무지든 가장된 무지든)를 의식적으로 과장하며, 코미디의 원천으로 삼는, 비교적 젊은 남녀 코미디언”이라는 데 주목한다.

코미디언들은 엄숙주의와 거리가 멀어 평범한 독자들에게 겁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잠재적 독자들이 우월감마저 느낀다는 것이다.

신랄한 비판은 지금부터다. 코미디언 진행자들은 책이라는 물건, 그러니까 책의 무게와 양 같은 단순한 사실에 관심이 있을 뿐 책의 주제나 지적인 해석, 감동의 깊이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책의 내용을 소개하거나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선정된 도서는 수많은 책 속에 숨겨져 보물찾기의 대상이 되고, 한아름 안아다가 수레에 실어 나르는 짐이 되고, 제한된 시간 안에 옮기는 놀이와 경품의 대상이 되고, 퀴즈에 당선한 사람이나 외국 거주 교포들에게 무상으로 주는 선물이 된다.

“책은 두려움도 선망도 경외심도 가책도 열광도 필요 없이 그저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는 단순하고 통일된 물건”이 된다. 그러니까 이 코너를 통해 책의 존재 이유가 변질돼버렸다는 것이다.

김씨는 프랑스에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계속됐던 독서토론 ‘아포스트로프’의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를 소개한다. 언론사 기자였던 피보는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20세기 프랑스 문화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됐다.

자신이 평범한 기자인 동시에 평범한 독자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게 피보의 성공 비결이었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독서에 할애한 피보는 평범한 대중이 궁금해할 만한 것을 프로그램에 출연한 저자들에게 물었다.

“대중은 아무 것도 모른다. 나 역시 아무 것도 모른다. 지식인과 작가들은 아는 것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쓴 책을 읽었으므로 한쪽의 무지와 다른 한쪽의 지식 사이에서 중계자가 되기엔 충분할 만큼 유식해졌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느낌표’의 코미디는 프랑스 TV에 견주어 볼 때 스스로 이 나라의 지적ㆍ정서적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김씨는 씁쓸하게 말한다.

그 풍경은 말 그대로 ‘코미디’지만 서글프다. 느낌표의 책 소개 코너는 7월 유럽으로 자리를 옮겨 “소박하고 우스운 사진들을 찍어 우리들의 안방으로 줄기차게 쏟아부었다.” 유럽 사람들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꿈을 위하여, 세계로 향한 창을 내다보기 위하여, 인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 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안 읽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학교에서 안 읽으면 죽인대요. 아마 선생이 책 쓴 사람과 친구인가 봐요.”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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