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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강자의 오만,자기 파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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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강자의 오만,자기 파괴뿐

입력
200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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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지덕(謙讓之德). 살벌한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별로 마음에 와 닿는 경구는 아닌 듯하다. 눈을 부릅뜨고 버텨도 경쟁에서 살아 남기 어려운 세상에 겸손과 사양은 이미 미덕이 아니라 패배와 추락의 지름길일 수 있다.그러나 어수선한 나라 안팎의 사정을 들어다 보면 오만과 이기심이 모든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장마와 태풍에 의한 집중호우도 아니건만 열흘이 넘게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져 재산피해는 물론이고 침수와 산사태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가 30명을 넘어서고 있다.

집중호우에 대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관계부처와 지방정부의 모습이 원망스럽지만, 눈을 돌려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면 이러한 자연재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날로 늘어가고 있어 가뭄과 호우, 한파와 혹서가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농작물의 피해는 해가 갈수록 커져 지구촌의 식량문제는 이미 심각한 지경이고 식수마저 고갈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청정지역이라고 믿어온 히말라야 산맥에까지 3㎞ 두께의 오염 구름층이 확산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분별한 개발과 끊임없는 소비의 증가로 자연이 파괴되고 환경이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오만함과 이기심이 지구촌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것이 아닌가. 자연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군사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공격 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보도에 접하면서 가치 독점의 독선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인가 걱정스럽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자국 안보를 위해 철저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패권적 지위를 이용하여 지구촌 곳곳을 군사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이라크가 유엔안보리의 결의안을 준수하고 무기 사찰단에 모든 장소를 개방하겠다고 공언한 마당에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난 후 미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건만 이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은 미국의 오만 때문이다.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으로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막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정치력의 차원에서 보면 그 힘을 잃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 오던 영국마저 예전 같지 않으며, 유럽의 지식인들도 미국의 패권주의에 비판적이다.

8·8 재보선에서 승리한 한나라당은 의석 과반수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다. 국무위원도 해임할 수 있고 예산안과 법률안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공적자금 비리문제 조사를 국무총리 인준과 연계하겠다는 공세적 자세를 취하는 한편 법무장관을 출석시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장남의 병역문제처리를 추궁할 모양이다. 대선을 불과 네 달 남겨 놓고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이 기회를 잘 이용해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고 민주당을 수세로 몰아넣어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를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힘이 오만하게 비춰질 때 재보선 승리는 족쇄로 작용한다. 앞으로 4개월의 정국이 파행으로 치달을 경우 한나라당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 미국의 패권의식,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 등은 힘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힘이 강할 때 그 힘을 이용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유혹은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쓰디쓰다. 힘이 강할수록 자제하고 약자와 힘을 공유할 수 있는 겸양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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