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새벽2시 서울 신라호텔 21층 북측 대표단 본부. 남측의 이봉조(李鳳朝.통일부정책실장) 서용교(徐永敎. 통일부 국장), 북측의 최성익(조평통 서기국 부장) 김만길(문화성 국장) 대표는 각각 보완한 공동합의문 초안을 들고 만났다. 그러나 북측이 내놓은 문안에는 여전히 경의선 연결과 이를 위해 필수적인 군사실무회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빠져있었다. 남측은 "공사시작 및 완공시점, 군사회담 일시를 못박지 않는다면 여타 합의 사항도 무의미하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북측은 "군사회담은 군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자꾸 일방적으로 나오면 협상이 곤란하다"고 맞섰다.남북은 군사실무회담의 시기 문제를 놓고 이처럼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수 차례 반복해야 했다. 남북회담의 오랜 악습인 '밤샘 협상⇒극적 합의'가 이번에도 재현된 셈이다. 남북 실무진은 그러나 새벽 동이 트자 한발짝씩 물러서 남측 군사훈련 및 북측 내부일정, 설봉호 출항일시 등 '변수'들을 다시 따지면서 금강산 육로회담등 하위 회담과 교류 일정을 조율, 이행 일자를 도출해 나갔다.
양측의 줄다리기는 13일 오전 2차 전체회의에서 어느정도 예고된 일이었다. 정세현(丁世鉉)통일부 장관은 북측이 경의선 문제를 2차 경협추진위에서 다룰 것을 제의하며 딴전을 피우자 "무슨 말이냐"고 핏대를 올렸고, 이에 맞서 북측 김령성 잔장은 "순리대로 풀자"면서 딴전을 부렸다.
협상이 질척거리자 대기실에 머물던 북측 지원인력이 3차례나 훈령이 적힌 메모를 김 단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북측은 남측이 제공한 별도의 남북 직통전화로 거의 실시간으로 평양의 훈령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요원들은 "회의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모르겠다"고 회담장 분위기를 전했다. 1시간 20분이나 계속된 회의가 끝난 후 남북대표들은 한결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당초 점심식사 직후 갖기로 했던 참관 행사도 3시간 이상 늦어지는 등 회담 일정이 전면 재조정됐다.
남북 대표들은 그러나 회담 외 공개행사에서는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북측 김 단장은 경기용인 민속촌을 방문해서는 관광개이 붉은 옷을 입고 지나가자 신기한 듯 "저게 붉은 악마 옷이냐"고 말했고, 방명록에는 "민족 풍속을 귀중히 여기자"고 썼다. 양측 대표들은 서울 강남의 한식집에서 열린 만찬에서는 한 목소리로 "회담 성공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건배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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