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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실험실의 귀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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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실험실의 귀뚜라미'

입력
200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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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교감은 중요하다. 그 중요함은 관찰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다음날에는 머리털(더듬이)을 하나 자른 뒤 “뛰어”라고 외쳤다. 역시 뛰었다. 다음날 두개 다 떼어내도 마찬가지였다. 며칠간 먹이를 주지 않고 “뛰어”해도 여전히 뛰었다. 이것저것 실험을 한 뒤 이번에는 다리를 자르고 “뛰어”하고 소리쳤다.

귀뚜라미는 (아이가 보기에)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론을 얻었다. 관찰일기 끝에 커다랗게 썼다. ‘귀뚜라미는 다리가 없으면 듣지 못한다.’>수년 전 미국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아이의 관찰일기는 익명으로 언론에 보도됐고, 많은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아이의 과실은 없다. 물론 귀뚜라미의 과실도 없다. 그러나 관찰만 있고 교감이 없었기에 쌍방이 관련된 결론은 엉뚱하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째 이런 일이 일어 났는가.

대상을 파트너(他者)로 여기지 않고 (주도권을 쥔 쪽이)제 멋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또 관찰자는 스스로 피관찰자보다 많이 우위에 있다고 믿고 있어, 그들의 의사를 파악하려 들기보다 그 의사가 자신에게 비춰지는 상(사실은 허상)만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잘못 되어도 자신에게는 오류의 피해가 직접 닿지 않는다는 상황이 설정돼 있다.

여론독자부에 있으면서 독자의 여론을 여러가지 형태로 접하고 있다. 편지도 받고, 이메일도 받고, 전화도 받고, 방문도 받는다. 주장하는 발언 중 적지않은 대목은 그들의 의견 가운데 상당수가 ‘당국(공공기관이든 사기업이든)’에 의해 묵살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당국’이 결론이라며 보내는 대답은 ‘다리를 그대로 둘 테니 잘 들어라’는 식이라고 한다. 일방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설명이고, 해법만 만들려는 ‘결론을 위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특혜 휴대폰을 제공한다 해놓고 자기들 편의대로 요금계산서에 특혜 없는 요금을 매기면서 ‘뛰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만 답하는 전화회사, 원하는 대로 신용카드를 발급해(물론 불법은 아니지만) 목적은 채우고 京컥?부작용에 대해서는 ‘그것은 귀뚜라미 사정’이라는 카드회사 등이 적지 않다.

대학진학을 위한 입시대책 발표, 수년간 되풀이 되어온 정부의 수해대책 등이 학생 주민과 관계당국 사이에 교감 없이 이뤄져 ‘피해’와 ‘성과’만 따로따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관료임명에서 임명권자와 시민, 선거에서 정당 및 후보와 유권자, 정책결정에서 국회의원과 국민이 아이와 귀뚜라미처럼 유리돼 있다.

다리를 떼어 내고 ‘뛰어라 했는데 안 뛰니 말을 못 듣는다’고? 언제 한번이라도 ‘귀뚜라미도 귀로 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는가. 그러한 생각의 부재가 ‘아이’의 유일한, 그러나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정병진 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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