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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19>제4부(3)미디어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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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19>제4부(3)미디어 권력

입력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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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대만의 한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국 영화산업이 할리우드의 공세에 맞서 시장을 지키고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조사차 들렀다. 그 교수는 한국 영화가 시장의 40%까지 차지하고 있다는 필자의 설명에 몹시 부러워하면서도 놀라워 했다.대만은 사정이 어떻기에 그런가 되물었더니 미국 영화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대만 영화산업은 기반이 붕괴돼 회복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의 거대한 다국적 매체 복합기업은 엄청난 물량 공세로 세계 곳곳에서 뉴스, 경제정보, 영화, 음반, 비디오, 게임, 광고와 마케팅, 시청률 조사, 스포츠중계 등 문화산업 전 부문에 진출, 상대 국가의 문화산업 기반을 허문다.

WTO 체제는 미국 중심의 문화산업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엇이 미국 매체와 문화상품을 강하게 만들고, 세계시장을 독과점하게 만들었는가?

첫째는 거대한 규모이다. 세계 주요 매체기업은 연간 100억 달러를 넘게 돈을 번다. 이들은 전세계에 걸쳐 수 백 개의 일간지와 잡지를 배포하며, 방송사, 영화제작사와 유통망, 인터넷, 위성방송 등 없는 게 없다. 한국의 매체시장 규모가 총 50억 달러인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의 매체 복합기업의 규모는 대단한 것이다.

둘째, 미국 주도의 글로벌 매체는 거대 자본과 정치권력의 복합체이다. 군수사업체를 모기업으로 발전한 기업이 미디어를 장악한 뒤 다시 금융자본의 통제를 받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성장 과정이 대표적 사례다.

세계 10대 글로벌 매체 가운데 순수 매체사업체는 AOL타임워너, 월트디즈니, 베텔스만, 뉴스코퍼레이션 정도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활동이 미국의 이익과 무관할 수가 없다. 미국 미디어 그룹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자본과 정치권력이 총체적으로 발현되는 형태를 띠게 된다.

한편으로 이들은 유력 정치인이나 전직 고위관료를 이사로 영입하여 후견인으로 두기도 한다. 글로벌 매체가 외국시장에 진출하거나 더 많은 이권에 접근하고자할 때 미국 정부나 정치인들은 앞장서서 압력을 넣는다.

셋째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점이다. 문화상품의 생산 규모가 늘면 늘수록 평균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본력이 큰 글로벌매체는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나 제작자를 사는 등 막대한 자금을 들여 콘텐츠를 제작한다. 글로벌 매체는 콘텐츠 제작에 많은 돈을 들이지만 국내외 시장에서 창구 효과를 실현함으로써 높은 수익력을 가질 수 있다.

약소국 매체가 글로벌 매체와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은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갖추거나, 대중적 시장은 이들에게 내 주고 틈새 시장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약소국 매체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에게 약소국 시장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주변부 시장에 불과하지만 약소국의 매체 기업에게 내수 시장은 사활이 걸린 시장이다. 그런데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해도 내수기반이 없는 경우 규모의 불경제로 인해 결국 재정난에 빠지게 된다.

미국산 문화상품은 또 양도 많거니와 다른 어떤 것보다 재미있다. 그 재미가 다른 나라의 문화산업을 압도한다. 미국 매체의 전문성, 객관성 그리고 신속성은 다른 나라를 압도한다. 이들은 손쉽게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고 약소국 매체는 경쟁력에서 밀려나고 만다.

뿐만 아니라 광고, 마케팅, 조사, 홍보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기초를 지배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외국의 자본이나 콘텐츠 범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만 광고, 마케팅 등 유통 및 조사 분야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소비자의 의식과 행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예측하는 기업이 시장 경제를 좌우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광고와 마케팅에 대한 다국적 자본의 지배는 심상치 않은 문제이다.

거대한 미국의 매체자본과 문화상품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례를 보자. 우리는 거의 매일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리모콘을 손에 쥐고 이곳 저곳 돌려보기도 한다. 1분 단위로 시청자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지 머릿수를 세어 이를 자료로 파는 회사가 미국계 AC 닐슨과 영국계 TNS코리아이다.

언론 영역에서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한국 경제와 내정에 대해서도 깊이 보도하며,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 경제정보시장은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즈위크 등의 손안에 있다. 방송뉴스 부문에서는 CNN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오락 분야에서는 미국의 영화, 음반 직배사가 국내 시장의 70%까지 차지한다.

미국은 알짜배기 기업인 광고회사도 대거 인수했다. CATV 산업에도 미국자본의 투자가 증대하고 있으며, 특히 헤지펀드의 유입이 시장안정성을 위협한다. 이렇게 미국매체자본과 문화상품은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진출해 국내 기업과 치열한 시장 다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경제위기를 겪은 이래 외국자본 유치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된 데다가 지상파방송의 시장이 개방되지 않아 문화제국주의의 힘을 실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유럽은 꾸준히 방송시장의 개방을 요구해 왔다.

이와 더불어 방송광고공사 중심으로 짜여진 방송광고 시장을 경쟁구조로 바꿀 것을 요구해왔다. 이것이 관철되면 한국의 문화산업은 결정적인 위기를 맞을 것이다.

미국의 매체자본과 콘텐츠 그리고 매체기술은 한국 문화산업에 진입하여 막대한 외화를 가져가고, 국내 산업기반을 옥죈다. 한국사회의 정보와 문화 흐름에 끼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전에는 미국에 의한 문화적 팽창과 지배가 강권에 의해 이루어진 문화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 시대였다면, 지금은 한국 사회의 ‘숭미 사상’을 바탕으로 미국 따라가기 문화가 일반적인 문화사대주의 시대이다. 그리고 상황은 이전보다 악화하고 있다.

인터넷, 위성방송, 디지털방송 등 디지털 매체까지 가세하여 질과 양에서 한국 문화시장을 압도하더니 속도까지 첨가되어 더 많은 돈을 미국으로 가져간다. 어느 누가 문화는 문화일 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미국 문화상품은 경쟁력이 있으며, 수준이 높고 다양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문화산업은 한번 허물어지면 단시간에 절대 복구되지 않는 특이한 영역이다. 문화산업은 돈만 있다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제작인력과 제작기법, 유통망, 수용자의 소비습관 등이 있어야 한다.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은 필연적으로 나라를 잃게 되고, 문화산업을 잃어버린 민족은 민족경제와 민족문화를 잃어버린다. 우리 문화에 대한 심각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승수(金承洙) 전북대 신방과 교수

■아메리카 핸드북 / 美,대외홍보기구 설립

‘독선에 가득찬 일방주의, ‘이스라엘 편만을 드는 중동정책.’ 세계 정보 흐름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유럽과 이슬람권 등에서의 반미 감정에 위기의식을 느낀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가 이르면 올 가을 백악관 직속 대외홍보기구를 설립하고, 국제선전 체계를 대폭 개편한다.

중심이 되는 것은 신설될 백악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국’이다. 대통령 고문 가운데 한 사람이 국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며, 미국의 국가 및 정책 이미지에 관한 해외홍보활동을 총괄하게 된다. 국제 뉴스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미국이 뉴스를 개선하기 위해 새 체제를 마련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1일 브리핑에서 “다른 나라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또 미국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미 언론에 따르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국은 지금까지 국무부가 담당해 온 해외 홍보활동을 확충할 뿐 아니라 중앙정보국(CIA), 국방부를 비롯한 각 정보기관과 부처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다. 대사관의 공보국도 궁극적으로는 백악관의 지시를 받게 된다.

미 정부 내에 처음으로 일사불란한 공보 지휘체계가 확립되는 것이다. 홍보예산의 대폭 증액과 미국의 소리(VOA), 라디오 자유 유럽 등 방송기관의 개편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전쟁 중인 지난해 10월 국무부 내에 홍보외교국 및 담당차관보, 파키스탄 등지에 국제정보센터를 설립하며 이슬람권의 반미 감정에 대응해 왔다. 이번 개편은 이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미 외교협의회(CFR)도 지난달 3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반미 감정에 대한 경고를 발했다. 보고서는 미 정부의 홍보외교예산이 연간 11억 달러에 이르지만 전체 외교 예산의 25분의 1에 불과하다면서 이대로 가면 미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여론이 악화해 대 테러 연대도 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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