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이후 3~4년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했던 은행들이 최근 사상 최대의 순익을 올리면서 또다시 확장 경쟁에 나서고 있다. 점포수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크게 늘어나고 잇단 자회사 설립과 급여인상 움직임도 나타나면서 은행들이 환란전의 무분별한 덩치 키우기를 답습하고, 기업구조조정 의지도 퇴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공적자금을 가장 많이 수혈받은 제일은행의 경우 점포수가 1997년말 413개에서 환란을 거치면서 98년말 339개, 99년말 336개, 2000년말 339개로 줄었다가 지난해말 392개로 크게 증가하면서 환란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주택은행과의 통합으로 97년말 511개에서 2001년말 2배 이상 증가한 1,122개로 커졌다. 광주ㆍ경남은행등의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부풀려온 우리은행의 점포수도 2000년말 625개에서 지난해말 688개로 증가했다.
서울은행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나은행도 지난해말 점포수가 297개를 기록, 97년에 비해 40%가량 급증했다.
다른 금융권 영역에 뛰어들거나 자회사를 신설하는 것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신한지주, 한미, 국민은행 등은 소비자금융회사를 설립했거나 조만간 설립,소액 대출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며 우리금융지주는 대우증권 인수를 추진하는 동시에 생보사도 만들 계획이다.
조흥은행은 골드만삭스와 공동으로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구조조정전문회사(CRC)를 설립키로 한데 이어 신용카드 부문을 분사해 자회사로 만들 계획이다. 신한지주는 아웃소싱 대상이던 채권추심업무를 위해 신용정보회사를 설립했다. 외형 부풀리기에 가장 좋은 수단인 지주회사 설립은 우리, 신한에 이어 하나, 외환, 조흥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문어발 사업확장에 대해 잇단 경고에 나서고 신설점포의 수익성 점검에 나서는 등 고삐를 바짝 죄기로 했다.
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은 간부회의에서 “최근 은행의 수익성이 좋아지면서 부실기업에 대한 여신심사를 소홀히 하고,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측면에서 느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비가 올 것에 대비해 미리 우산을 준비하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점포수가 늘어난 것은 1개 점포를 기업과 가계부문으로 쪼갠 데 따른 것”이라며 “단순 숫자만 가지고 은행이 외형 부풀리기에 혈안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의춘기자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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