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0월 중순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당시 필자는 서울 개포동 아파트촌에서 살고 있었다. 장을 보러 가는 아내가 “짐이 좀 많을 것 같으니 함께 갑시다”라고 해서 따라 나섰다.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걸어 나가는데 쓰레기장 옆에 버려 놓은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도 쓸만했다.
자세히 보니 멀쩡한 물건이 아닌가. 그래서 아내를 향해 “여보, 우리 집 소파보다 훨씬 좋은데 이것 주워다 씁시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버린 물건인지도 모르고 쓰레기장에서 주워다 쓴다는 것이 좀 뭣하네요. 우리 집 것보다 좋기야 하지만…” 아깝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저녁밥을 먹으면서 식구들과 ‘마당세일’ 이야기를 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는 자기가 쓰지 않는 중고 물건을 주로 이웃사람들에게 판다.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 집안 정리를 하면서 비록 자기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중하게 쓰일 수도 있는 물건을 간추려 내다 놓고 파는 것이다.
집 마당이나 차고에서 물건을 팔기 때문에 ‘마당세일’, ‘차고세일’이라고도 한다. 아까 쓰레기장 옆에서 본 소파도 수위실 옆에 놔두고 몇 만 원이라고 가격표를 붙였더라면 살 사람이 많았을 게다. 그렇게 방치해 두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선뜻 가져가지 않는다.
이야기 끝에 우리가 ‘마당세일’을 한번 해 보자고 하였다. 우리 집만 하면 물건도 얼마 안 되고, 파급효과도 작을 것 같아서 친지나 동네 사람들이 같이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나는 “같이 ‘마당세일'을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4쪽 짜리 글을 썼다. 이 전단을 2,000부 가량 찍어 온 식구가 길거리에 나가 행인들에게 돌렸다. “1989년 10월 29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개포 8단지 아파트 옆 길가에서 마당세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첫번째는 ‘마당세일’로, 그 다음부터는 궁리 끝에 ‘알뜰시장’으로 이름을 바꿔 몇 년간 행사를 이어 나갔다.
첫날 행사 때 근처에 사는 한국일보 기자가 이를 본 모양이다. 그래서 한국일보 사회면에 ‘이색장터’라는 제목으로 크게 실리고, 이어 다른 신문·방송이 잇따라 보도하면서 ‘알뜰시장’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보통명사가 되었다.
조휘갑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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