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1980년대다. ‘머나 먼’ 1960~70년대가 아니다. 복고영화 ‘몽정기’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가 등장하고, 최근 가수 김완선과 이승철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인 이성복씨가 말한 ‘분명히 아프기는 하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80년대가 복고의 주인공이 됐다.*왜 80년대인가
대중문화는 복고의 대상으로 왜 70년대를 버리고 80년대를 선택했을까.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영상홍보학과 교수는 “대중의 기억이란 20년 정도가 최대 폭이다. 10~30대는 더 이상 70년대 영화 ‘별들의 고향’을 알지 못한다.
과거를 회상하며 미디어 상품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시기는 이제 80년대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KBS ‘해피투게더’의 연출자 이훈희 PD는 “요즘 대중문화 상품의 공급자가 30대라는 점도 ‘80년대 복고’에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며 “학창시절 친구들끼리 학생식당에 모여 나눴던 이야기들이 386세대는 물론, 언니 오빠를 통해 80년대를 기억하는 20대에게도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가요
음악은 복고의 가장 좋은 재료다. 들으면 그 시절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80년대 국내 음악의 큰 흐름은 세가지. FM의 팝송과 TV인기가수, 그리고 운동가요다. 이 모두가 20여년이 지난 지금, 386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80년대 복고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팝송. 2, 3년 전부터 80년대의 대표적인 노래들을 묶은 컴필레이션 음반들이 출시돼 ‘팝송세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유니버설에서 나온 ‘아이 러브 80s’, 영화 ‘친구’의 붐을 타고 7만장 가까이 팔린 소니의 ‘추억의 롤라장 1,2집’이 대표적이다. 퀸시 존스, 라이오넬 리치, 글로리아 게이너, 듀란 듀란, 컬쳐 클럽 등도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 편집 음반의 단골 가수들이다.
TV 가수 중에서는 김완선이 독보적이다. 86년 ‘오늘밤’으로 데뷔해 ‘나 홀로 뜰앞에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 90년까지 가요계를 휘저었던 그는 요즘 새 노래 ‘S’로 한창 인기몰이 중이다.
김완선의 부활은 그가 8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꼽힐 만큼 뚜렷한 이미지로 기억되기 때문. 그 이미지는 16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변함이 없다. 기억이 복고를 넘어 현재화한 셈이다.
김완선은 이 달 말부터 흰 자위가 많은 묘한 눈빛과 물결처럼 흔들던 80년대의 섹시한 춤 동작을 강조한 후속곡 ‘쉘 위 댄스’로 복고바람을 더욱 강하게 일으킬 계획이다.
그 시절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운동권 노래.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가수와 새로운 형식으로 라디오와 TV심지어 춤추는 클럽에서도 들을 수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를 리메이크한 거북이와 안치환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샘플링한 MC 스나이퍼가 주인공들이다.
*방송
방송 역시 적나라하게 80년대를 들춰내며 이전 복고의 대상이었던 70년대와는 결별하고 있다. 주 시청자인 10~20대가 더 이상 새마을운동과 유신독재와 흑백TV화면으로 요약되는 70년대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
그들에게 향수와 복고란 고급 스포츠화와 중저가 브랜드, 그리고 올림픽과 컬러TV화면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 2002’은 이같은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운동권 청년’ 박성호와 ‘빈가슴 처녀’ 김지혜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대표적 캐릭터.
“선생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합니다”를 외치는 박성호는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전형적인 말투와 몸동작을 흉내낸다. 김지혜의 “나혜리, 이 나쁜 기집애”도 85년 만화잡지 ‘보물섬’ 연재에 이어 88년 TV 애니메이션으로 크게 히트한 ‘달려라 하니’의 패러디.
신동엽과 이효리가 진행하는 KBS ‘해피투게더’의 ‘책가방 토크’와 ‘쟁반 노래방’의 ‘80년대 되살리기’는 훨씬 정교하다. 출연자가 80년대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것은 기본. ‘책가방 토크’에 등장하는 소재 역시 고급 스포츠화와 롤러 스케이트 열풍 등 8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것들이다.
‘쟁반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도 모두 80년대 초중고 교과서에 수록된 곡들이다. 대학시절 운동권 출신 교사(정보석)를 주인공으로 한 SBS ‘여고시절’의 그 시절은 바로 80년대 학창시절이고, MBC ‘코미디 하우스’의 ‘봉자야’ 는 80년대 소도시(강화도 외포리)가 그 배경이다.
*영화
‘그래도 코미디는 시장성이 있다’는 것이 제작자들의 말이다. 80년대라는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가 증명하듯, 그 시대는 최대의 영화 수요자들인 20대들에게 유년의 기억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촬영중인 류승범 임은경 주연의 ‘품행제로’(감독 조근식)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복고풍 ‘코믹 히어로 액션’. 과장된 액션이 만화적 영상으로 표현된다.
만화는 ‘품행제로’의 중요한 소재이자 표현방식으로 인기만화 ‘하록 선장’의 주인공이 춘화의 주인공으로 변신하며, ‘마징가 Z’는 로봇 최초의 농염한 애정 신까지 보여준다는 후문이다. TV외화의 주인공 ‘원더 우먼’도 볼 수 있고, 일본 레슬러 이노키의 멋진 헤드록도 준비했다.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파이’를 연상케 하는 ‘몽정기’(감독 정초신)는 80년대 중학생들의 성적 시도(?)를 화면에 담았다.
국어사전에서 성적인 단어를 찾기만 해도 흥분되는 중학생들의 욕망을 코믹터치로 그린 영화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로 이문세가 출연하며, 그들이 성욕을 발산하는 대상으로 70년대에 없던 ‘컵 라면’이 등장한다.
80년대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KBS ‘해피투게더’.
80년대 TV 쇼 무대를 누볐던 가수 김완선과 지금의 김완선.
영화 ‘품행제로’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류승범.
영화’해적, 디스코왕 되다’에서 디스코를 추는 해적.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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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기자
koshaq@hk.co.kr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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