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주간지 ‘씨네21’의 편집장이었던 조선희(42ㆍ사진)씨가 2000년 7월 어느날 사표를 던졌다.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었다.“잘 나가는 영화잡지 편집장이 더 좋은 자리가 아니냐. 실수하는 거다” 라며 지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단호했다. “당대, 바로 지금 일어나는 얘기를 내 목소리로 하겠다.”
조선희씨가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전2권ㆍ생각의나무 발행)을 펴냈다. 대학 동창으로 벤처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40대 초반 네 남자들의 얘기가 1부, 이 남자들을 관찰하면서 분석하는 여성 정신과의사의 얘기가 2부를 이룬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전투구하는 인간의 열정과 그것의 다른 이름인 불안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직장을 그만둔 지 2년 만에 발표한 것이지만, 그녀는 소설의 주제가 2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좇아온 것이라고 했다(1982년부터 통신사와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이상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이 현실에서 처절하게 부딪치는 것을 묘사하고 싶었다.
동시대인의 야심과 욕망을 통해 현대사회의 단면을 내보이려고 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소설은 문체가 다소 거칠고 구성이 매끈하지는 않지만 매우 빠르게 읽힌다. 그와 친한 고종석씨는 “일급 TV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고 발문에 썼다.
누구나 궁금해 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새로운 세기 문화의 중심이라는 영화를 두고 왜 문학을 선택했는가? 조씨는 최근 이창동 감독와 나눈 대화를 전했다. “이창동씨가 그러더라. 자기 소설 중에 가장 많이 팔린 게 ‘녹천에는 똥이 많다’인데, 1만부라고.
그런데 영화 ‘박하사탕’은 관객 50만 명이 들었다고 했다. 매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시스템의 예술이다.
개인의 창작을 존중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문학은 다르다. 소수 독자와 의사소통을 하면서도 깊이 있고 밀도 높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조씨는 정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1988년 6명의 작가가 엮은 소설집 ‘밤길의 사람들’에서 중편 ‘퇴적층’을 발표했다.
“아이디어가 있었고 그걸 표현하는 형식이 필요했다. 때마침 문학기자 2년차로 소설이라는 예술 형식에 친숙해져 있었다.
아이디어를 소설로 옮겨 쓰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20대 후반의 외도와 객기가 40대에 전업이 됐다. “박완서씨는 40대에 등단했지만, 70세가 넘은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분을 닮고 싶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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