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후보, 兵風차단 회견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가 7일 장남 정연(正淵)씨의 병역 비리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민주당의 ‘병풍(兵風)’ 공세에 따른 8ㆍ8 재보선 판세 변화와 의혹 공방의 장기화 가능성을 동시에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당초 이 후보측은 검찰 수사가 초기 단계인 시점에서 이 후보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었으나, 병풍 공방이 재보선 판세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에 따라 회견 시기를 앞당겼다.
이 후보가 “하늘에 두고 맹세컨대 비리를 저지른 적이 없다”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통령 후보 사퇴와 함께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배수진을 친 것은 더 이상의 의혹 증폭을 막아 하루 앞으로 다가 온 재보선에 미칠 영향을 최대한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후보는 이날 회견의 상당 부분을 검찰의 신속한 수사 마무리를 촉구하는 데 할애, 이 문제가 12월 대선까지 꼬리를 끄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집권세력이 진흙탕 싸움을 유도, 정치 혐오를 극대화한 뒤 정계개편과 신당 창당으로 갈 것”이라는 정세 인식을 밝혔다. 이런 시나리오가 실행에 옮겨질 경우 이 후보도 의혹 공방에 휘말려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검찰을 강하게 압박, 조기에 수사를 매듭짓도록 함으로써 병역 논란의 고리를 끊겠다는 게 이 후보의 구상이다. 담당 검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수사 협조를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나선 것도 수사 지연의 명분을 뺏으려는 포석이다.
이 후보는 이날 회견에서 두 번이나 민주당을 겨냥, “정치공작을 일삼는 정상배 집단”이라고 비난했고, 민주당이 부인 한인옥(韓仁玉)씨의 병역비리 연루설을 제기한 데 대해 “인격 살인”이라고 표현하는 등 극도의 분노를 드러냈다.
유성식 기자
▼李후보 일문일답
-공정 수사를 위해 특검제를 수용할 용의는.
“현정권이 지난 5년간 모든 것을 샅샅이 뒤져 이 사건을 추적ㆍ조사한 만큼 검찰이 진실을 가리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자의 말 때문에 특검을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후보가 모르는 사이에 가족이 비리에 간여했을 가능성은.
“자체 확인 결과 비리에 연루되거나 참여한 일이 없다.”
-후보나 가족이 검찰에 출두할 의향은.
“굳이 나와 가족을 불러 조사하지 않아도 곧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야당 후보 음해공작이 아니라면 나에 대한 조사 없이도 끝날 사건이다. 물론 공정한 수사라면 언제든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부인 한인옥(韓仁玉)씨의 비리 개입을 입증할 증언이 있다고 했다.
“분노를 느낀다. 부부는 일심동체여서 아내가 한 일을 내가 모를 리 없다.”
-검찰의 담당 부장검사가 교체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검사는 죄수에게 8개월간 병역비리 수사관 노릇을 시켰고 이번 사건은 바로 그 가짜 수사관의 고발로 시작됐다. 누가 봐도 공정한 수사는 불가능하다.”
■韓대표, 확전 회견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7일 기자회견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대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공식 선전포고다. 또 한나라당의 정치공작설 제기, 검찰 고발 등을 수사 방해와 본질 물타기용 공작정치로 몰아 세움으로써 병풍 정국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크게 세 가지 문제를 부각시키려 했다. 우선 “검찰의 병역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이 5대 망동을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 소속 법사위원 10명의 검찰총장 압박 ▦사건 배당 전 특정지역 출신 서울지검 특수1부장의 배제 요구 ▦대검으로의 사건 이관 요구 ▦수사책임 검사 고발 ▦법무부장관의 ‘공작정치 하수인’ 매도가 그가 든 사례이다.
한 대표는 또 그 동안 나왔던 병역비리 관련 의혹들을 집대성한 ‘병역비리ㆍ은폐 대책 7대 의혹’을 내놓았다. 이 후보 두 아들들의 급격한 체중감소, 병적기록부 가필 훼손, 이 후보 동생 회성(會晟)씨의 의무사령관 접촉, 이 후보 부인 한인옥(韓仁玉)씨의 1,000만원 이상 제공설 등을 여기에 포함시켰다.
한 대표는 이와 함께 한나라당의 정치공작 공세 자체를 공작정치로 규정했다. 특히 김대업씨 접촉에 대해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왜 공작이냐”“김씨가 전과자라서 믿을 수 없다면 선거법 위반 등의 각종 전과가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얘기도 모두 거짓이라는 얘기냐”고 역공을 폈다.
한 대표는 결론적으로 “이 후보는 수적 우세를 앞세운 국민협박정치, 망국적인 지역주의 정치, 수사 방해, 정치공작을 즉각 중단하고 스스로 병역비리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장외투쟁이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압박 카드로 제시됐다.
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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