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오아시스는 없다.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문소리)의 어두운 방에 걸린 조악한 스킬 자수의 그림처럼 허망한 환상(판타지)으로나 존재할 뿐이다.사막이 넓고, 목 마르고, 지칠수록 더욱 간절한 그 환상이야말로 탈출구 없는 현실을 더욱 지독하게 드러낼 뿐이다. 공주가 거울로 반사시킨 빛이 하얀 나비가 돼 방안을 자유로이 날아다닌다.
그 순간 나비는 분명 공주의 환상일 터이지만, 관객이 보는 것은 나비가 된 공주(환상)가 아니라 사지를 비튼 채 어둡고 낡은 아파트에 갇혀 지내는 공주(현실)이다.
이창동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오아시스’ 에서 환상은 이렇게 역할을 배반한다. 종두(설경구)를 사랑하게 된 공주가 지하철과 카센터 사무실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나, 스킬 자수 속의 코끼리와 인도여자가 걸어 나와 방안에서 춤추는 환상조차 초라하다.
멜로 영화의 가장 큰 무기인 판타지가 오히려 감정이입을 끝없이 방해한다.
그래서 ‘오아시스’는 잔인하다.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인간과 현실상황을 가장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음주운전으로 환경미화원을 죽여 감옥에 갔다 돌아온 종두와 그 피해자의 딸인 공주. 약간 지능이 낮은 사회 부적응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다.
우리에게 그 사랑은 그들이 서로 별명처럼 부르는 공주와 장군이 사랑의 판타지가 아니기에 불편하다. 오히려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의 사랑과 감정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우스운 풍경으로만 볼 뿐이다.
‘오아시스’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주변 인물들, 그들에게 목소리 높이지 않고 종두와 공주의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통해 그런 왜곡과 편견과 계급의식을 집요하게 깨나간다. 그래서 마침내 방관자의 웃음을 자괴감으로 바꾸고, 종두와 공주에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가서게 만든다.
그 순간이 종두가 혼자 있는 공주의 아파트를 찾아가 빨래를 해줄 때든, 종두가 어머니 생일잔치에 공주를 데려가 형에게 혼나고 나서 방울새 이야기를 하면서 꺽꺽 댈 때든 상관없다.
그때부터 종두와 공주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관객들은 종두가 공주와 섹스를 시도하다 강간 미수범으로 몰려 경찰에 잡히고, 진실을 밝히지 못한 공주가 자해행위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는 것이 가슴 아파한다.
종두가 방에 비치는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공주를 위해 아파트 밖의 나뭇가지를 미친 듯이 자르는 모습에서 ‘사랑의 힘’을 확인한다. 분명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허망한 일인 줄 알면서도, 햇살이 비치는 환한 방을 청소하면서 교도소에서 종두가 보내온 편지를 읽는 공주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그것을 연민, 동정심, 아니면 자기 반성이라고 해도 좋다. 그 무엇이든 간에 결국은 또 다른 판타지인 셈이다. 그림 속에나 존재하는 그런 신기루가 아니라, 사랑이 만든 현실의 아름다운 바로 그 ‘오아시스’이다. 15일 개봉.
설경구 문소리가 아니면 이런 인물설정이 가능했을까. 아무도 흉내 못 낼 사회부적응자가 된 설경구와 뒤틀린 모습만으로도 고통을 그대로 전하는 문소리.
이대현기자 leedh@hk.co.kr
■'오아시스' 이창동 감독
이창동(48)감독을 만나면 늘 답답하다.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는 듯하면서 부정하고, 부정하는 듯하면서 긍정하고. 그러면서 이 이야기꾼은 자신의 소설을 쓰듯, 영화를 만들 듯 고집스럽게 자기 생각을 다 말한다.
-‘오아시스’의 베니스영화제 본선 진출을 축하한다.
“영화제를 위해 영화를 찍지 않는다. 내 영화의 1차 대상은 한국 관객이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남(외국관객)이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더 큰 보편성을 얻으면 좋지만.”
- 어떤 영화라고 해야 하나.
“분명 멜로영화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약물을 주입하는 식의 아름다운 판타지와 감동을 철저히 배제했다. 조감독의 표현처럼 ‘감정의 두더지가 나올 만하면 망치로 때렸다.’ 공주의 환상도 영화속 인물과 실제 배우의 존재를 대비시켜 관객들에게 영화와 현실을 경계를 의식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을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 사회부적응자와 뇌성마비장애인이란 인물설정도 그것과 관계가 있는가.
“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일수록 판타지를 느끼기 어렵다. 그것은 곧 나와 다른 것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사랑의 문제와 같다. 결국은 소통의 문제다.”
- 종두의 캐릭터는 어디서 얻었나.
“어디에나 있다. 내 친구 중에도 있다. 할 일 없이 빈둥대면서 귀찮게 하고, 속 뒤집어지는 말만 하면서 그것을 애정표현으로 생각한다. 모두 싫어하지만 사람들은 어려울 때는 그를 적당히 이용한다. 종두처럼 형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감방에 갈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보도, 완전한 정상인도 아닌 인물이다. 그 경계에 있다. 설경구의 연기를 보고 내가 ‘너무 바보 같다’ ‘너무 정상이다’ 라며 자꾸 고개를 저으니까 ‘미치겠다’고까지 했다.”
- 의도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나, 관객들 역시 똑같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어느 순간 수많은 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그래도 통과하기를 바라고 있는 나 자신을 획인했다. 후반에 영화가 훨씬 안정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왼손만 쓰다가 힘드니까 오른손이 나왔다. 영화를 보고 ‘두 사람이 예뻐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분명 실패다. 그러나 기분이 좋았다. 힘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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