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검인정을 통과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서술이 부족했던 것은 집필자와 검정위원들이 수 십년 동안 내려온 관행을 별 생각 없이 따랐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 가운데 한 권의 집필자 중 한 사람으로서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점에 대하여 겸허하게 비판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치적을 미화한다든가,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용을 수정해 나갈 것이다. 절차와 시간상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남아 있다.그런데 논란이 되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서술이 들어간 것은 ‘집필상의 유의점’에서 국정 국사 교과서와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 국사교과서에서 현 정부에 대한 서술이 들어 있는 한 검인정 교과서도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검인정 교과서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거나 국정 교과서를 수정하지 않는 한,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문제를 바람직한 역사 교육에 대하여 고민하는 차원에서 다루기보다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끌고 간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태도였다. 그들은 이전 정권 하에서 집필 되었던 모든 국정 국사교과서가 당시의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이기는커녕 미화하는 내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어떠한 논란도 제기해 본 일이 없었다.
뒤늦게 그것이 수십 년의 관례였다는 것과 검정위원 선정에 정치적 배경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 관련 기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심지어 한 때 검정의 통과 여부를 현 정부에 대한 서술과 관련 있는 것으로까지 단정하였던 그들의 모습을 돌아본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국정 교과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번 사태를 정치적 차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오히려 정권의 압력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는 제도로 돌아가자는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아직 교과서의 실체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언론이 내용 자체를 왜곡해서 보도한 경우도 많았다. 김영삼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서술을 위주로 썼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가장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책에서조차 김영삼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을 서술한 분량이 더 많으며, 여러 차례 일어났던 대형사고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그 동안의 총체적 사회 부조리의 산물’로 서술하고 있다. 소절의 제목에서도 ‘김영삼 정부, 민주주의 개혁을 실시하다’와 ‘여야 정권교체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가지고 현 정부에 편파적인 서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이번에 보여준 정부의 대응도 유감스러웠다. 집필자들이 수정을 거부한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직권수정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앞서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데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위험한 발상은 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 교과서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정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도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자신의 역사관에 맞지 않는다고 논란을 벌이는 일이 계속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분위기에 현대사 서술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검인정 교과서는 학계와 교육계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작되어야 한다. 교과서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닌 집필자들이 책임을 져야 하며 역사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최종적인 채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만약 편향적이거나 내용이 부실한 교과서가 있다면 외면당할 것이다. 검인정을 통과했던 일본 신우익이 집필한 교과서의 채택률이 0.039%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주진오 상명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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