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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도 美의 敵"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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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도 美의 敵" 파문

입력
2002.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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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함께 대 중동정책의 양대 축인 사우디를 미국이 위험시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은 국방전문 싱크탱크인 랜드(RAND) 연구소의 정책 보고서가 보도되면서이다. 그러나 양국간 이해의 충돌은 지난해 9ㆍ11 사태이후 중동문제, 에너지 정책 등 각 분야에서 꾸준히 증폭되고 있다.▲악의 핵 보고서 파문

워싱턴포스트는 6일 “랜드 연구소의 분석가 로랑 무라윅(전 프랑스 국방장관 참모)이 7월 10일 국방정책기획단(DPB) 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는 우리의 적이자 악의 핵(kernel of evil)’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무라윅은 “사우디 정부에게 전세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대한 자금 지원과 사우디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미ㆍ반이스라엘 선전활동을 금지하도록 하는 한편 사우디 정보기관 요원 등 테러활동와 연계된 자들을 처형하거나 격리시키라고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우디인들은 정책입안자부터 금융가, 그리고 간부에서부터 일반 병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종 테러활동에 연루돼 있다”면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우디의 유전과 미국내 사우디 금융자산 등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대 테러전에서의 갈등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자 사우디측은 미국을 강력히 비난했다. 사우드 알 파이잘 사우디 외무장관은 “이번 보고서는 완전한 픽션”이라며 “그 같은 의견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지만 이번 경우는 결코 정부의 입장이 아니다”고 말해 겉으로는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사우디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행동과 견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을 뿐 사우디를 두둔하지 않아 사실상 미 정부의 불만을 인정했다.

실제 양국은 최근 대테러전 등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대립 양상을 보여왔다. 사우디에 1991년 걸프전 이후 10년 넘게 미군이 주둔하면서 주변 아랍국과 국내 반미 세력의 불만이 고조된데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공공연히 거론하자 올초부터 미군 철수설이 심심찮게 제기됐다. 이에 따라 중동지역 주둔 미군의 주력은 현재 상당수 인근 카타르의 도하기지로 옮긴 상태다.

미국 입장에서는 지난해 9.11 테러의 용의자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인이며 테러자금의 상당 부분이 사우디에서 조달된 만큼 이라크 공격을 비롯한 대 테러전에서 도리어 사우디가 선봉에 나서야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내 전문가들은 대 이라크 군사행동에 가담하지 못하는 것은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압둘라 왕세자의 확고한 권력 장악 실패가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뿌리깊은 이해의 충돌

양국간의 이견은 여러 분야로 확산한 끝에 이제는 서로의 안보를 위해 방해가 되는 상태로까지 이르고 있다. 3월에는 미 국무부가 연례 인권보고서를 통해 사우디의 인권침해 사례를 적시하기도 했다. 특히 국제석유시장을 비롯한 양국의 에너지정책을 둘러싼 이해대립은 심각한 지경이다.

미국은 과도한 대 사우디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카스피해로의 진출을 노리고 있다. 또 석유시장의 라이벌인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을 강화한 것도 사우디와의 관계 경색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강행할 경우 사우디 정부는 정치불안을 막고 생존을 위해 미국에 대해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용식기자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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