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인 중년의 두 여자가 마주 앉았다. 바람 피운 남편과 이혼하고도 미련이 남아있는 여자. 여자는 남편에게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내가 바보라고? 네 사랑만 사랑이고,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니. 내 사랑은 철부지고 네 사랑은 진실이고 그런 거니.”MBC TV 월화미니시리즈 ‘고백’(극본 이란, 연출 임화민)에는 중년 여성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았음 직한, 그러나 실행까지는 꿈꾸기 어려운 말과 행동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중년여성들이 열광한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여성시청률은 11.0%로 남성(5.5%)의 곱절이고, 특히 30대 이상의 여성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30대 16.2%, 40대 13.7%, 50대 이상 12.3%로 여성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5일 21.1%, 6일 23%의 시청률을 올린 ‘고백’은 7월1일 첫 방송 때만 하더라도 12%를 기록한 평범한 드라마였다. “불륜 드라마가 아니다”라는 제작진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시청자 자극용으로 불륜을 끌어다 붙인 ‘위기의 남자’속편 격으로 치부됐다.
첫 회에 지나치게 선정적라고 비판을 받은 동규와 영주의 애정 행각은 그러한 의혹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백’은 일찌감치 불륜의 틀을 깨버렸다. 윤미(원미경)_ 동규(유인촌)_ 영주(정선경), 상일(강석우)_ 정희(이응경)_ 도섭(송승환)의 두 갈래 삼각구도가 기본이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불륜은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과거 완료형이다.
대신 불륜 이후를 수습해가는 중년의 갈등과 새로운 관계, 그리고 미묘한 심리를 묘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자신을 버리고 젊은 여자를 택한 전 남편의 새 가정을 깨뜨리는 것으로 복수를 하려는 듯했던 윤미는 동규가 사업에 실패하자 오히려 도움을 주려한다.
오만 정이 떨어져서도 아니고 아내로서 남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데 대한 죄책감과 연민 때문에 윤미는 “아직도 동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권위적인 상일에게 억눌려 살던 정희도 드디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손목 한번 잡지도 않은 사이지만 도섭을 사랑한다고 남편에게 용기 있게 고백하고는 가슴을 졸이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는 밑반찬을 해놓고 집을 나간다. 윤미와 정희, 동규와 상일은 중년의 여성, 남성들의 실상인 셈이다.
시청자가 공감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버림 받아서 밉고 분하지만, 그에 대한 미련과 혼자 남은 쓸쓸함으로 고심하는 윤미,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동규, 그리고 영주, 그들 모두를 위로하고 싶다”(안판모)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드라마”(백은정) “상일이란 캐릭터, 우리 아빠를 많이 닮았다. 전형적인 남자다”(정자은) 등 회를 거듭할수록 등장인물에 깊게 공감하고 있다.
‘고백’은 불륜이라는 소재 특유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은 사라졌다. 대신 이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민 중년, 오래 살아 익숙해진 것에 대한 회의가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가정과 부부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드라마로서, 불륜이 아닌 중년의 현실과 새로운 삶의 제시로서 ‘불륜’이 얼마나 더 시청자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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