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새너제이 심포니가 이달 중 파산 신청을 할 것이라고 최근 외신이 전했다. 123년 전통의 오케스트라가 적자를 견디다 못해 문을 닫게 된 것이다“미국 오케스트라들은 정부 지원이 거의 없이 기부ㆍ협찬금과 티켓 수입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파산도 드물지 않습니다. 지난해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의 경제상황 악화로 기부가 줄면서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모든 비영리단체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그러나, 파산의 근본원인은 그게 아닙니다. 시대변화를 따르지 못한 구태의연함 탓이지요. 새너제이심포니는 젊고 돈 많은 기술두뇌가 몰려있는 곳이에요. 그들을 관객으로 붙들면 파산할 리 없죠. 그런데도 실패한 것은 관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팝스콘서트(8~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박정호(40)의 비판은 날카롭다. 이런 질타는 파산한 오케스트라를 살려낸 그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샌디에이고 심포니를 구한 주역으로 유명하다.
누적된 적자로 파산절차를 밟고 있던 샌디에이고 심포니는 98년 그를 새 음악감독으로 영입하면서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무대에 영상과 연극적 장치를 도입하고 록 기타리스트나 일본 전통악기 고토 연주자를 세우는 등 다양하고 참신한 시도로 관객을 다시 불러모았다.
퇴근길 교통혼잡을 피해 귀가하려는 직장인에 맞춘 러시아워 콘서트, 가족 관객을 겨냥한 패밀리 콘서트도 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설득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존재 가치를 확신시켰고, 그 결과 퀄컴사로부터 1억 달러의 기부를 끌어내는데 성공해 큰 화제가 됐다.
그를 가리켜 뉴욕타임스는 ‘열정 넘치는 지휘자’, 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은 98년과 99년 연속 ‘지켜봐야 할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소개했다. 샌디에이고의 성과를 눈여겨본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오케스트라가 그를 초청해 현재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제 목적은 예술을 싸구려로 만들거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음악을 청중에 좀더 쉽게 전달하려는 것입니다. 뉴헤이븐 오케스트라에 와서 새로 만든 패밀리 콘서트에는 공연 전후 어린이들이 악기를 만져보고 음악 게임도 할 수 있는 놀이공간을 로비에 마련했죠. TVㆍ영화ㆍ인터넷과 함께 자란 젊은 세대를 상대로 수십 년과 똑 같은 악보, 똑 같은 방식의 연주를 계속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케스트라는 좀 더 ‘동시대적’(contemporary)이어야지, 유물을 쌓아둔 박물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음악의 고정관념을 깨는 콘서트, 좀 더 의미있고 청중과 교감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새롭고 독특한 것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음악, 뮤지컬, 사랑의 테마 등 매일 주제를 바꿔 구성한 이번 팝스콘서트 프로그램은 그의 작품이다.
연주될 영화음악 중 상당수는 본래 오케스트라 악보가 없는 것을 그가 직접 편곡해 선보이는 것이다. 재미동포 2세로 우리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그는 지난해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의 지휘를 맡아 국내에 데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한국이 고향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면서 자주 와서 연주하고 싶다고 말한다.
청중과 교감하며 함께 즐기는 음악회. 지휘자 박정호의 꿈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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