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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당대사 기술

입력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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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편향기술 논란이 검정위원 전원 사퇴로 이어지는 등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교과서 넌란의 핵심은 당대 정부에 대한 내용을 교과서에 기술하는것이 과연 바람직 하느냐는 것으로 귀결된다. 현정권에 대한 평가는 시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한계가 있는 만큼 교과서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주장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역사 교육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 맞서 있다.■찬 / 이완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논란이 된 한국근현대사는 필수과목이 아니라 전체 고등학생 중 일부만이 선택하는 교과서에 관련된 문제이다. 집필진과 검정위원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개성과 양심 및 사상의 자유에 의거해 집필하고 심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전체적인 틀은 문제 삼지 않고 하나의 문제만을 부각시켜 검정위원들을 사퇴하게 만든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이다.

파문이 일어났다고 해서 정부가 마련할 교육과정과 준거안 등 집필 지침을 보다 구체화하여 서술 하한선을 명시한다면 그것은 다양한 견해를 수용하여 국정교과서를 검정화하려는 시대정신과 배치되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에 나타난 내용은 집필자와 출판사가 책임질 문제이며, 문제가 있다면 일선 학교의 선택과정에서 걸러질 일이지, 국정교과서와 같이 정부가 혼자 떠 안을 문제는 아니다.

이번 교과서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 정부의 업적만을 서술하면서 과거 정권을 폄하한 점은 인정된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흘러 시간적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 ‘역사가 평가할 문제’ 인 것은 확실하다.

무릇 교과서 서술 작업이라는 것이 짧게는 2~3년의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다. 근현대사가 서술될 당시 현 정권의 각종 비리와 실정이 공개되지 않았고 IMF도 극복하였으며 노벨평화상도 받았던 비교적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상황에서 집필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바뀐 상황에 맞추어 집필자의 수정을 유도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일 수 있다.

그러나 삭제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현대사 교과서는 고중세사 교과서와는 달리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와 직결된 시대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가장 가까운 현대사까지도 담고 있어야 생생한 우리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다.

당(當)시대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박제화된 사서에 불과하다. 과거 정권에 대한 평가에서 미묘한 의견대립이 있다고 해서 객관적인 사실마저 덮어두려 한다면 어떻게 현대사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까?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인 현 정권에 대한 일방적 찬양이 문제가 된다면 객관적 사실 위주로 서술하면 될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바꿀 수도 없으므로 있는 사실만을 차분하게 담아내는 절제된 사관이 필요하다. 역사가가 어떻게 검증된 사료만을 가지고 사서를 편찬할 수 있을까? 역사가는 그릇되고 편견된 자료와 사실에 기반한 자료를 골라낼 줄 아는 사료 비판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국사학계가 근현대사를 편찬함에 있어서 정확한 눈으로 사료를 솎아낸다면 현 정권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에 대한 서술은 정치 등 사회과 교과에 맡기면 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는 낡은 시각이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역사’로 보면서 모든 역사는 현재임을 시사했던 E. H. 카의 명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논쟁을 회피한다면 역사를 연구하는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 / 김용직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근현대사 역사 교과서 파동은 오늘날 당대사(當代史)에 대한 역사기술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논쟁적인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역사교과서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역사 기술이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정권교체가 자주 이루어지는 민주화 시기에 들어와 정파간 대립 및 갈등이 깊어지면서 여야는 첨예한 쟁점 사안마다 대립하고 각종 역사적 해석에서 한치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의 집필에서 보듯 조선시대부터 역사 기술의 중요성은 강조되었다. 그러나 현직에 있는 왕과 그의 통치에 대한 기술 및 평가 부분은 당대에는 피하는 것이 전통으로 확립돼 내려 왔다.

불행하게도 해방이후 역대 정권이 당대 정권에 대한 역사교과서 기술을 정권 홍보 차원에서 활용하여 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잘못된 관행이다.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근현대사 부분에 대한 기술이나 평가를 언제까지나 유보할 수 없으며, 이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부분에는 공감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극히 신중하여야 한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당대 정권 뿐 아니라 바로 이전 정권에 대한 서술도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사정을 감안하여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피하며, 사실 언급조차 극도로 자제하는 관행이 지배적이다.

이들 선진국의 정·관계에서도 정부와 국정에 대한 정치적 자체판단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학계나 언론의 의견 표출은 자유롭게 허용하되 교과서를 통해 당대의 정치 및 통치 행위에 대한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근현대 역사교과서 집필에서 충분히 객관적으로 쓰여질 수 있는 사실이나 시기와 그렇지 못한 사실이나 시기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현대사의 가장 최근 시기에 대해서는 학계의 객관적 연구와 평가가 축적되고 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어느 정도 확립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쟁점 사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15~20년의 경과 기간이 필요하며 이 경우도 일반적인 기술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쟁, 쿠데타, 민중항쟁 등 중요한 사건들은 각종 국내외 정부의 공식 및 비공식 자료들의 공개가 이루어지는 30년이 지나야만 객관적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적어도 현 정부와 바로 이전 정부에 대한 기술은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객관적인 판단을 주장할 근거 자료가 취약하거나 논쟁적인 상태에서 기술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현 정부의 업적 찬양이나 이전 정부에 대한 찬양 또는 책임전가식 비난 위주로 기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과서가 현 정부의 심의와 검열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과 이에 못지않은 출판사 자체 검열에 의해 현 정부에 비판적인 부분은 삭제될 가능성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논란부른 '검정위원 공개'

3일 고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검정위원 10명이 “명단 공개로 더 이상 공정한 검정이 불가능하게 됐다”며 전원 사퇴함으로써 교과서 편향기술 논란이 ‘검정위원 비공개 원칙’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번졌다.

교육당국과 학계에서는 검정인력 부족, 공개에 따른 검정위원 부담, 그리고 각종 로비잡음 등 현실 여건상 비공개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지만, 차제에 검정과정을 투명화하는 차원에서 명단공개를 제도화하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명단이 공개될 경우 출판사 로비 등으로 공정성이 훼손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비공개원칙은 해방 후 검정제도가 도입되면서 채택돼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운용돼 왔으며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도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퇴한 한 검정위원도 “근현대사엔 학문적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재한 데 내용이 문제가 될 경우 필진뿐 아니라 검정위원에게도 화살이 날아오게 된다”며 “이 같은 명단 공개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교과서 검정에 참여할 사람은 현실적으로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다고 해도 여건이 조성된다면 검정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명단공개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검정위원의 책임을 분산하거나 줄이고 로비기회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선행된다면 명단공개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처럼 최종 검정결과를 발표하기 전 겉표지를 백지로 만든 ‘백표지본’을 일선 학교에 보내 교사들이 검토하는 현장검정 과정을 도입하는 방안도 개선책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이성호교사는 “10명이 6일 남짓한 기간에 엄청난 양을 검토하는 당장의 현실에서 검정위원 명단공개는 생각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현장 교사들에 의한 검정 등 검정과정 자체가 공개화한다면 명단공개를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교총의 홍생표연구위원은 “검정위원 공개 여부에 대한 논의보다는 선정과정에 학계, 교육관련 단체가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검정위원의 수를 늘리는 등의 시스템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국기자 t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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