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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 부정부패도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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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 부정부패도 가르치자

입력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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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위선이란 악덕이 덕에게 바치는 공물(供物)이다(Hypocrisy is a tribute vice to virtue)’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위선 행위가 그 반도덕성에도 불구하고 덕이 악덕에 비해 우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시인하고 확인하는 행위라는 의미이다.”강정인 서강대 교수의 저서 ‘마키아벨리의 이해’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렇다. 분명히 위선은 필요악인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솔직을 빙자한 무례에 상처를 입어 본 사람이라면 실감할 것이다.

나는 적정 수준에서의 위선에 대해선 지지를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적정 수준’을 판단하는 게 영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된 위선의 문화는 그 적정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큰 일 날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국 사회가 썩은 게 문제라기보다는, 부정부패의 불공정 경쟁과 부정부패에 대한 이중 기준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량한 사람들은 부정부패를 멀리 하고 그걸 끊임없이 비판한다. 교육도 그렇다. 학생들에게 부정부패를 용인하자거나 칭찬하는 발언을 하는 교사나 교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그런 아름다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산다는 게 매우 어렵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착하게 사는 사람만 늘 손해를 보고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사회와 교육 사이에 간극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간극을 가급적 좁혀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든가, 아니면 그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손해를 보거나 바보가 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부정부패 요령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닐까? 씨알도 먹히지 않을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기보다는, 차라리 ‘부정부패의 공정거래’를 해보자고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부정부패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큰 일 날 소리라고 호통치진 마시기 바란다. 그냥 한번 역의 발상을 해보면서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해 보자는 것 뿐이니까 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교육의 ‘현실화’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건 ‘이상일 뿐이야’라는 말을 내뱉는다. 학교에서 배운 건 다 ‘이상’으로만 간주되고 ‘현실’은 사회에 나가 처음부터 다 다시 배운다.

원래 그런 거 아니냐고 무심하게 넘기지 말고 이러한 이중 구조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과감하게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학생들로 하여금 ‘이상과 현실’의 이분법과 양자택일을 극복케 하고 그 어느 중간 지점에서 이상에 근접할 수 있게끔 살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각종 부정부패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이런 현실에 대해 교육이 져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해본 생각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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