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張裳) 총리임명동의안 부결과 이에 따른 총리 공백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 국무총리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대통령제 하에서 총리제를 도입한 것은 3공화국부터이지만 김영삼(金泳三) 정부까지는 총리가 ‘얼굴 마담’에 불과하다는 점 외에는 총리제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여당이 다수당이었기 때문이다.
총리제의 총체적 모순점들은 소수여당 체제인 현정부에 들어와 표출되고 있다. 우선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총리인 고건(高建) 총리의 제청을 받는 형식으로 새 정부의 각료를 임명했다.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를 총리서리로 지명했으나 6개월여 동안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해 국정 운영 차질이 장기화했다. 또 이번에 장 서리 동의안이 헌정 사상 42년 만에 부결됐으나 대통령은 총리서리 또는 직무대행을 지명하지 않아 국정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장서리 임명 동의안 부결은 개인적 약점이 주요 배경이 됐지만 앞으로 총리동의안 부결이 재발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우선 다수 야당 체제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일이 자주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총리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순수 대통령제에서는 총리제가 없으며, 순수내각제에서는 집권당이 연립을 통해서라도 다수세력을 형성해 총리를 ‘선출’하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처럼 대통령,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에서는 대통령이 속한 정파가 소수당이 될 경우에는 다수당에서 총리를 배출해서 ‘동거 정부’ 관행을 만들었다.
성균관대 권혁주(權赫周ㆍ 행정학) 교수는 “우리 헌법이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혼합 형태이다 보니 제도상의 부정합적 측면이 적지 않다”며 “총리제가 그대로 유지되려면 대통령이 다수당 지도부와 협의해서 총리를 임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어 “각 정당이 합리적으로 총리임명 동의안 표결에 임하는 관행도 필요하다”며 “정부 구성과 관련된 표결이므로 정당은 당론을 정하는 게 책임있는 자세”라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새 정부 출범 시 총리 임명동의안 통과에 최소한 보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새 정부 구성이 지연된다는 점이다. 2000년 인사청문회법 제정으로 청문회 등을 거쳐야 하므로 정권 출범 직후 즉각적인 총리 임명 동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 구(舊) 정권의 총리 제청을 받아 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게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서울대 권영성(權寧星) 명예교수는 “본래 총리서리제는 헌법상 문제가 있지만 정부 출범 시기에 한해 제한적으로 총리서리나 총리 대행이 각료를 제청할 수 있도록 법률 규정을 두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기 중반 총리의 궐위 또는 총리 및 장관의 잦은 교체에 따른 정부 공백 장기화도 문제점이다. 최근 논란 중 하나인 총리 직무대행문제와 관련, 권영성 교수는 “집권 중반에는 총리 궐위 시 총리 직무대행을 두는 것은 헌법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상당수 정치학자들은 “이제 인사청문회가 도입됐으니 총리와 장관을 가급적 교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총리제의 法的 미비점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총리 부재’ 상황이 4일로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새 총리 지명자가 국회 인준을 받기 전까지의 총리 대리체제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은 각각 총리 서리제와 총리 직무대행제를 주장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엄밀하게 따지면 어느쪽이든 위헌 소지가 있어 법적 문제가 있다.
총리의 경우 사임ㆍ사망으로 직무를 맡을 수 없는 궐위(闕位)에 관한 법규정이 없다는 점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 71조에 ‘궐위나 사고시’ 임명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총리 직무대행에 대해서는 정부조직법 22조에 “국무총리가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로만 돼 있을 뿐 궐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일각에서 “정부조직법의 ‘사고’가 ‘궐위나 사고’, 또는 ‘사고 등’으로만 돼 있었어도 불필요한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총리 직무대행 규정 자체가 헌법에 관련 규정이 없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까지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총리서리 임명은 위헌”이라며 “새 총리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 이전까진 전윤철(田允喆) 경제부총리를 직무대행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조직법 22조를 적극적으로 해석, 장상(張裳) 전총리서리가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해 물러난 현상황을 ‘사고’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청와대는 22조를 엄격하게 해석, 현상황은 총리가 휴가, 질병 등으로 일시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고’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관행에 따라 총리서리 임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청와대는 2000년 5월 박태준(朴泰俊) 당시 총리가 재산문제로 사퇴했을 때는 이헌재(李憲宰)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을 3일간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현재대로라면 내년 새 정부 출범 때도 총리 서리제 논란은 거듭될 수 밖에 없다. 새 대통령은 총리 서리제가 아니라면 법 절차를 따르기 위해 물러나는 총리로부터 국무위원 제청권을 받는 편법을 써야 한다.
단국대 장석권(張錫權) 교수는 “정부조직법을 고치고 미국처럼 ‘궐위에 관한 법률(Vacancies Act)’을 두어 공직 지명자의 행위를 국회인준 때까지 120일간은 보장하는 등으로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역대총리
건국 후 국무총리(4ㆍ19 직후 총리 및 5ㆍ16 직후 내각수반, 총리서리 및 권한대행 포함)는 43명에 이른다. 이들은 최단 11일(이윤영ㆍ李允榮), 최장 6년 7개월(정일권ㆍ丁一權) 재직했고 평균적으로는 1년 정도 총리직에 있었다. 이들의 발자취는 대통령제 하에서의 총리의 위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장상(張裳) 총리서리의 퇴진을 계기로 살펴볼 때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한 총리서리는 모두 7명이다. 21명의 총리서리 중 신성모(申性模), 허정(許政), 이윤영, 백한성(白漢成), 박충훈(朴忠勳), 이한기(李漢基)씨 등이 서리 딱지를 떼지 못했다.
총리에 대한 국회동의가 어느 정도 중요한지는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마지막 총리인 고건(高建)씨가 현 정부의 조각시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한 데서 잘 드러난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첫 총리의 국회동의 절차가 여의치 않자 고 총리에게 제청권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수 총리들은 국정쇄신, 민심수습이라는 명분 하에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실책의 책임을 떠안고 물러났다. 대통령을 방어하기 위한 ‘방탄 총리’인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첫 총리 황인성(黃寅性)씨는 우루과이 라운드에서의 쌀 시장 개방을 막지 못해 퇴진했고, 이영덕(李榮德)씨는 성수대교붕괴참사, 충주유람선화재 사건 등 잇단 대형사고로 곤욕을 치르다가 물러났다.
나라의 기틀이 다져진 1963년 이후 임명된 총리들의 재직기간을 볼 때 총리 평균 재직기간이 길었던 시기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집권시절이었다. 63~79년 16년 간 5명만이 총리로 재직해, 이중 정일권씨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5공, 6공, 문민정부에서는 모두 21명의 총리가 교체돼 1년을 약간 상회하는 재직기간을 갖는다. 역대 총리 중 총리직을 두 차례 맡은 총리로는 장면(張勉), 허정, 백두진(白斗鎭), 김종필(金鍾泌)씨 등 모두 4명이다.
출신지역별로 보면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에는 호남지역 출신이 없었으나, 5공이후 김영삼정부까지에는 이북출신과 호남 출신이 많았다. 이 기간 영남출신 총리는 노재봉(盧在鳳) 이수성(李壽成)씨 등 둘뿐이다. 5공 이후에는 학자의 총리발탁이 한 추세였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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