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책 읽기를 무척 싫어했다. 나이 차이가 많은 언니들의 수준 높은(?) 책을 기웃거리다보니 내 눈 높이에는 맞지 않았나보다.그러던 나를 자타가 공인하는 책벌레로 만들어준 책이 있다. 바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다. 아버지의 미국인 친구가 선물로 주신 컬러 그림이 가득한 영어책이었는데, 나는 그 내용과 상관없이 형제들 공동의 책이 아닌 나만의 책을 가졌다는데 더 흥분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영어를 알 리가 만무, 처음에는 그림으로 내용을 때려 맞추면서 보았다. 시간만 나면 아버지한테 읽어달라고 졸랐더니, 견디다 못한 아버지가 같은 내용의 한글판을 사오셨다.
나는 그 두 책을 가지고 스스로 영한 대역본을 만들어서 궁금증을 해소해 갔다. 내 또래의 주인공이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면서 벌이는 대담하고도 인정넘치는 모험이 어찌나 신나고 재미있었는지. 책 속의 글자는 살아있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웃기고 울린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분명히 그때부터다. 내가 책을 찾아 읽고, 빌려 읽고 심지어는 용돈을 털어서 사서까지 읽기 시작한 것이. 어떤 책 한 권이 그 내용으로 한 사람의 삶을 움직일 수 있다면, 나에게 ‘톰 소여의 모험’은 그 책 자체가 독서의 즐거움을 깨우쳐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더욱이 영문판 ‘톰 소여의 모험’을 읽으면서 영어를 친근하게 만났다는 것은 대단한 보너스였다.
영어를, 싫지만 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정말 궁금한 것을 하나 하나 풀어가는 놀이로 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영어 이외의 외국어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또 한동안을 이 책과 살았다.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미국문학사 시간에 이 소설을 원어로 읽는 기쁨을 맛보았다. 종국에는 ‘허클베리핀의 모험’과 묶어 졸업논문을 썼으니 나와 ‘톰 소여의 모험’과의 인연이 범상치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한비야ㆍ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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