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백남순(白南淳) 외무상과 조지 파월 미 국무장관의 지난달 31일 브루나이 회동이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이라는 실질적 관계 개선책까지 도출함으로써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후 18개월간 경색됐던 북미대화의 물꼬가 터졌다.향후 북미대화는 남북 및 북일 관계개선 움직임과 맞물려 6ㆍ29 서해교전 이후 극도로 불투명했던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전망이다.
특사방북 시기
백 외무상은 1일 “미국이 제임스 켈리 부시 대통령 특사(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 시기를 통지해주기로 했다”고 미국측에 공을 넘겼다. 파월 장관은 일단 이번 회동 결과를 부시 대통령에 보고하고 한국ㆍ일본과의 협의를 거쳐 특사 방북일자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은 특히 이 과정에서 2~4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7차 남북 장관급회담 실무접촉 결과와 북일 수교협상 준비접촉 상황, 북한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외교 소식통들은 파월 장관이 먼저 다가가 북측의 대화 의지를 확인한 만큼 이 달 중에 켈리 특사를 파견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사회담 의제
그러나 파월 장관이 백 외무상에게 제시한 의제는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은 사안들이었다. 파월 장관은 지난해 6월 부시 대통령이 제기했던 핵ㆍ미사일ㆍ재래식 군비문제 등 3대 의제를 사실상 되풀이했다.
때문에 양측이 핵사찰과 경수로 건설지연 보상주장이 부딪치고 미사일 개발유예를 놓고 신경전을 펼칠 경우 다시 위기상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성홍(崔成泓) 외교장관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에서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북측의 협상태도 백 외무상은 이번 ARF에서 북한의 전면적인 대외관계 개선 의지를 국제사회에 재확인했다. 지난달 25일 7차 남북 장관급 회담 제의, 다음날인 26일 미국의 특사파견 수용 방침 및 북일 외무회담 일정 발표 등 화해를 지향한 북한의 입장이 ARF 외무장관 회의를 계기로 구체화한 셈이다. 종래의 통미봉남(通美封南)이나 선남후미(先南後美) 정책이 아니라 전방위 대화로 급선회한 것이다.
백 외무상은 특히 파월 장관에게 북한이 지금껏 의제상정 자체를 거부해왔던 재래식 무기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화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이 구태의연한 자존심을 버리고 어떻게든 미국과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물론 이번 ARF에 제출한 연례안보 보고서에서도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는 재래식 무기는 절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북미 협상과정에서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주장이라는 분석이다.
반다르 세리 베가완(브루나이)=이동준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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