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만의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사태는 정치권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다양한 생각과 과제를 제기했다. 각계의 의견을 모아본다■정치권/짧은 청문회 기간 연장해야
장상총리후보 인준안 부결을 계기로 공직인사에서 대통령 등 인사권자가 사적인 연을 배제하고 공익성을 먼저 고려하는 인식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 의원은 "인사가 말썽을 빚는 것은 대통령이나 추천자가 개인적 인연을 앞세워 뽑기 때문"이라며 "주변에서 뽑는 식의 인사를 하면 검증기관이 수십 개라도 무용지물"이라고말했다.
민주당 송영길(宋永吉) 의원도 "주요 공직후보는 대통령이 사적인 인연이나 채널로 찾아선 안 된다"며 "여론조사 등 민심파악을 통해 현 단계에서 필요한 기준을 마련하고 여기에 적합한 후보군을 뽑은 뒤 국정원 등 여러 기관에서 중복 검증해 발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개선 목소리도 많았다. 민주당 임채정(林采正) 의원은 "청문회가 공직자에 대한 도덕기준을 높이는 계기가 됐지만 인신 공격적이고 정략적으로 접근한 사례가 많았다"며 "청문위원들의 자질을 높이고 청문회가 말 그대로 국정수행능력을 검증하는 장이 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사청문위원으로 참여했던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 의원은 "이틀간의 청문기간을 늘리고 대상자의금융ㆍ부동산 거래내역 등 검증에 필요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국 기자
■여성계/포용력있는 여성 발탁됐으면
정권말기 각종 비리사건과 대선정국의 혼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중립적인 인물이 새 총리로 기용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면서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 탄생에 대한 기대 역시 놓지 않았다. 또 새 총리지명자는 공직수행능력은 물론 자질과 도덕성 면에서 시비가 없도록 엄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이경숙(李景淑) 대표는 "기본적으로 새 총리는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할 것이며 정권말기의 혼란속에서도 원칙에 충실하면서 다양화된 사회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포용력이 있는 인물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정강자(鄭康子) 대표는 "장상총리가 국회인준을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여성도 고위공직의 벽을 뚫을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부여에는 큰 역할을 했다"며 "여성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와서 대선을 앞두고 훌륭한 마무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은방희(殷芳姬) 회장은 "과거의 경험이나 경력보다는 정보화시대, 세계화시대에 기민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과 넓은 시야, 풍부한 국제사회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재계/잘못 시인하는 정직한 사람필요
인사들은 장상 총리서리 후임자가 갖추야 할 가장 큰 덕목으로 '정직과 솔직'을 꼽았다. 다음 총리 후보로 여성이 지명될 경우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 많았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전임자가 정치권과 여론의 집중 비난을 받은 뒤라는 점 때문에 "여성 총리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반응과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말 국정을 마무리하려면 아무래도 남성 총리가 적임"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D사 고위 임원은 "장 총리서리는 재산, 아들 문제에서 가족 핑계를 대는 등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며 "다음 총리는 잘못이 있으면 용기있게 시인하고 반성할 줄 아는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차기 총리는 총리 인준안 부결로 혼란스러워진 정국을 추스릴 수 있는 남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수준 이하의 질문이나 후보자 인격을 모독하는 듯한 질문이 난무하는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고위 공직 후보자라면 그런 것들도 지혜롭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며 "인사청문회는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여성 총리 후보 인준안이 부결됐다고 해서 다시 여성을 지명하지 말란 법은 없다"며 "다만 내각 수반으로서 전임자가 불미스럽게 물러난 마당에 과연 여성 총리의 영(令)이 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황상진 기자
■시민단체/민주주의 소신·개혁성 갖추길
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전문성과 도덕성은 별개의 기준이 아니라 상호연계 돼 있다"며 "총리로서의 국정수행능력은 국민으로부터 신뢰성을 확보할 때만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고 신뢰성은 바로 도덕성에서 나오는 만큼 도덕성이 근본이자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고 실장은 "이런 인물을 발탁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내정하기 전에 가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존안자료, 민의, 언론 등의 사전검증시스템을 통해 여러 인물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실장은 또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정당, 정파에 얽매이지 말고 정말 국무총리로서 잘 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참여연대 김민영(金旻盈) 시민감시국장은 고위공직자의 자격기준으로 ▲국정수행능력과 통합조정능력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개혁성 ▲도덕성과 청렴성 등 세가지를 들고 "국회의 인준 거부를통해 드러난 고위 공직자의 높은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다음 총리 지명시에도 지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 국장은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았고 의의가 지대했던 만큼 다음 총리 지명자로 여성을 발탁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외국에서는 고위공직자 임명과정에서 행정부 자체의 사전 검증절차가 국회 청문회 보다 더 시간을 갖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 청문회 이전에 사전 검증을 통한 철저한 사실관계 확인을 당부했다.
/최기수 기자
■학계/화합·조정 국정수행능력 중요
성균관대 김일영(金一榮ㆍ정치외교) 교수도 총리의 기준으로 도덕성과 국정수행능력 두가지를 들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주도적으로 나서서 정권을 위해 일한 사람은 곤란하고 땅 투기, 병역문제 등 국민 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에 대해 흠이 없어야 한다"며 "국정수행능력은 현 시점에서 추진력보다는 화합과 조정 능력이 더 필요한 만큼 정당과 정파 색깔이 짙지 않은 인사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여성 총리는 의미가 크지만 첫 여성 총리라는 상징적 의미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며 "다만 같은 조건의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남성과 여성이 있다면 가급적 여성을 발탁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장동진(張東震ㆍ정치외교) 교수는 "공직에 몸 담고자 하는 이들은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에 앞서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공직 진출의 필수 요건임을 인식해야 한다"며 "그렇다고 도덕성을 공직자 선정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으며 문제 해결 능력 등 여러 가지를 두루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번 인준 부결로 당장 우리 정치계는 타격을 받겠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정치 발전에는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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