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는 백남순아세안지역안보 포럼(ARF)에 참석중인 북한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의 언행이 과거와 크게 달라 눈길을 끌고 있다.
백 외무상은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의 회동에 큰 의미를 주려고 애쓰는가 하면 회동내용을 일부러 공표하고 강조하는 등 적극적 모습을 보였다. 국제적 공인, 기정사실화, 또는 미국에 대한 압박의 계산이 담긴 행보로 여겨졌다.
백 외무상은 이날 기자들과 마주친 자리에서 미국이 아직 대화재개 합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자 안타까운 표정으로 “거 참, 그 사람들…”이라며 “켈리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백 외무상은 이어 특사회담 시기를 묻자 “미국이 알지, 내가 알겠냐”고 말해 미국측에 불만을 표시하는 듯 했다.
백 외무상은 잠시 후 듯 파월 장관과의 합의내용을 문서화한 언론 보도문을 배포했다. 보도문은 북미 양측이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방문 시기는 추후에 확정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도문에는 백 외무상과 파월 장관의 전체 성명을 쓰지 못했는가 하면, 켈리(Kelly)를 칼리(Kally)로 쓰는 등 오ㆍ탈자를 남겨 급히 마련한 인상이었다.
/반다르 세리 베가완(브루나이)=이동준기자
■뜸들이는 파월
콜린 파월 미 국무부장관은 31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 백남순 외무상과 전격회동해 미북대화 재개에 합의하고도 이를 즉각 발표하지 않았다.
파월 장관을 수행한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파월-백남순 회동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후속 회담이나 방문 등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북한이 발표한 성명을 고려할 것”이라며 켈리 차관보의 방북 합의라는 핵심 사안은 얼버무렸다.
이에 비해 백남순 외무상은 1일 발표한 성명에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차관보가 방북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방북 시기는 추후 확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혼선 때문에 한때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북한측이 단순한 상견례였던 파월-백남순 회동 결과를 너무 부풀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마저 제기됐다.
이처럼 미국과 북한 간에 회담 결과를 놓고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었던 것은 대북 대화 재개에 극히 부정적인 백악관과 국방부 등을 의식한 파월 장관의 신중한 처신 때문이었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분석이다.
파월 장관은 4일 귀국 직후 부시 대통령에게 미북 회동 결과를 보고한 후 콘돌리사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켈리 특사의 방북 일자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켈리 특사의 방북이 성사되기에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우선 정부 내 대북 라인의 의견조율을 거쳐야 하는 데다 의회 등으로부터도 양해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외교관계자는 “특사 파견 일정 조정을 위해 뉴욕 채널을 통한 접촉이 필요한 점과, 8월이 의회 휴가철인 점이 변수”라고 지적하고 “한미일 3자조정감독그룹(TCOG)회의가 9월초 서울에서 열릴 예정임을 감안하면 켈리 차관보가 이 회의에 참석한 후 바로 평양에 가는 수순이 가장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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