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 밀수사건과 이 때문에 빚어진 의사당 오물투척 사건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김두한(金斗漢) 의원의 의협심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사건 이후 이어 진 그의 불우했던 인생의 마지막까지 생각이 미치니 가슴 한 쪽이 아려 온다.김 의원의 오물투척 사건은 당시 실세였던 김종필(金鍾泌)씨를 모략하는 데 이용됐다. 사건 직후 나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청와대에 갔다.
그 자리에는 정일권(丁一權) 국무총리와 엄민영(嚴敏永) 내무장관, 이후락(李厚洛) 청와대 비서실장, 김형욱(金炯旭) 중앙정보부장이 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형욱 부장이 느닷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각하, 이번에 김두한이 오물을 뿌린 것은 김종필이가 시켜서 한 짓이 틀림없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김 부장이 잘못 알았겠지.” 박 대통령은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김형욱 부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틀림없습니다. 사카린 밀수 사건을 처음 보도한 것이 경향신문인데, 그건 JP 계열인 김용태(金龍泰) 의원이 정보를 흘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두한이 형무소에 갈 때도 역시 JP 계열인 김택수(金澤壽) 의원이 5만원짜리 수표를 건네 주었습니다. 또 그날 연설 내용을 보더라도 이후락 부장 등은 심하게 공격하면서도 김종필은 동정하는 투였습니다.”
이후락 실장도 김형욱 부장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나는 속으로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워낙 한쪽으로 쏠려 그냥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김 부장이 김두한이를 끝까지 다그쳐서 자백을 받아 내.”
큰일 났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 주위를 에워 싸고 있으니 결국 대통령도 오판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JP계는 아니지만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찬이 끝나고 한 사람씩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나갈 때 나는 일부러 맨 마지막에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는 대통령과 악수하며 이렇게 말했다. “각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보더니 식당 옆의 서재로 데려 갔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각하, 오늘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돌아가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말씀 드립니다. 저는 대통령 한 분만 보고 공화당에 들어 왔습니다. 그런 만큼 결코 JP를 옹호하려는 게 아닙니다.” 박 대통령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하는 듯했다.
“오늘 이야기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경향신문 기사는 울산지국에서 올라 온 것이고, 김택수 의원이 돈을 건네 준 것은 사식이라도 사 먹으라고 인간적인 정리에서 준 것입니다. 김택수 의원이 본래 인정이 많은 사람 아닙니까. 김 의원은 누구한테 사주를 받아 연설할 그런 인물이 아닙니다.”
박 대통령은 한동안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제 얘기가 진실입니다. 몇 사람이 짜고 각하께 거짓말을 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이렇게 감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박 대통령의 입이 떨어졌다. “알았소.”
그러나 내 직언은 먹혀 들지 않았다. 김두한 의원은 이후 중앙정보부에 끌려 가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 몇 달 뒤 을지로의 화정이라는 음식점에 들렀다가 김두한 의원 부부와 마주쳤을 때 나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몸이 수척해 진 건 그렇다 치더라도 옛날의 그 당당하던 기개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얼마나 심한 고문을 당했던지 내 눈빛조차 피할 정도였다. 말도 또렷하지 않았다. 순간 마음이 아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김두한 의원은 그래도 고집이 있어 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수원 화성에서 출마했으나 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폭력에 짓밟혀 어처구니 없이 말년을 망친 것이다.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까움을 가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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