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간이었지만 나 자신이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31일 국회 임명 동의안 부결후 2시간여 만에 사퇴한 장상 총리서리는 기자실에 들러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장 서리는 "이번 일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국민의 여망이 어디에 있는 지 알게 됐다"며 겸허한 심정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중앙청사를 떠나며 현관 경비직원에게 "일찍 출근하는 나를 맞느라 고생했다"며 악수를 건넸고, 현관 앞 총리실 간부들에게는 "고생했다"며 인사했다. 특히 현관에 있던 이상주(李相周) 교육부총리에게는 "이제 진짜 오래 쉬고 싶다"며 허전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는 손을 흔들어 달라는 카메라 기자들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주면서 차에 올라 서대문구 북가좌동 자택으로 떠났다. 11일 총리서리 취임당시 취임식을 가졌던 것과 달리 이임식이 생략된 초라한 퇴진이었다.
이날 그의 표정에서 서운함이 감춰지지는 않았다. 그는 "여성의 시대인 21세기에 남성과 여성이 일할 기회를 갖고자 했으나 부덕의 소치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며 '여성 총리'에 대한 거부감을 지적한 뒤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성숙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전체적으로 성숙의 계기였지만 청문회와 언론보도가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순간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결후 총리실 관계자를 통해 입장을 발표하면서도 2시간여 동안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한 경위도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에 앞서 장 총리서리는 이날 오전 8시 10분께 청사로 출근한 뒤 국회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홀로 집무실에서 기도와 묵상을 통해 국회 표결결과를 기다렸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장 서리는 오후 3시 50분께 정강정(鄭剛正) 총리 비서실장등과 함께 '뜻 밖의 결과'를 보고받자 "내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이번일로 야기될 국정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회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고, 이날 오후 5시 50분 장 서리가 청와대에 사의를 밝히기 까지 총리실은 향후 사퇴 절차에 관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리실측은 "부결에도 불구하고 장 총리서리는 대통령에게 사퇴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총리서리직을 유지할 것"이라며 사퇴 표명을 얼마간 유보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총리실 주변에서는 기형적인 총리서리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다시 나왔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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