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울릉도는 입체적인 볼거리로 가득하다. 촉촉한 바람, 갈매기와 어울려 바다의 비경을 흠뻑 즐긴다.그것이 끝이 아니다. 일주도로를 타고 해안을 돌다 보면 바다에서 발견 못했던 색다른 풍광에 또 한번 놀란다.
▼유람선일주
적당히 물기가 배인 시원한 바람이 뱃멀미에 지친 속을 말끔히 씻어낸다. 울릉도 여행에서 맨 처음 관광객을 맞는 것은 먹성 좋은 갈매기다.
통통거리는 모터소리를 알아듣는지 도동항에서 유람선이 출발할 때부터 달라붙는다. ‘자유의 여신상’처럼 새우깡을 손에 들고 팔을 뻗으면 재빨리 나꿔챈다.
날카로운 부리에 행여 손이라도 다칠까 겁이 나지만 이들의 사냥 솜씨는 놀랍도록 정확하다. 배가 가는 속도와 정확히 같은 속도로 날아오기 때문에 갑판에서 보면 거의 정지한 듯 보인다.
꼭 한 놈을 겨냥할 필요도 없이 그저 공중으로 높이 던져 올리면 어떻게든 받아 먹는다.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옷이며, 가방에 허옇게 떨어지는 분비물이다. 주변 바위섬 곳곳이 하얗게 얼룩져 있다. 갈매기들의 ‘수세식 공동화장실’ 이란다.
향나무자생지, 사자바위, 만물상… 오각뿔 모양의 섬을 시계방향으로 반쯤 돌다 보면 어느새 이 놈들도 지치는지 따라붙는 숫자가 슬슬 줄어든다.
때맞춰 본격적인 볼거리가 나타난다. 울릉도 해상 3경 중 첫번째로 꼽히는 코끼리바위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가 코를 물에 박고 바닷물을 몽땅 들이마시는 형상이다. 다가서면 그 정교한 주상절리(柱狀節理)의 생김새에 놀라게 된다.
마치 나무를 패서 정성스레 쌓아 놓은 듯, 길쭉한 육각형 모양의 기둥이 빼곡하다. 이곳서 10여분을 더 가면 지상에 놀러왔다 돌아갈 시간을 놓친 선녀 셋이 바위가 되었다는 삼선암(三仙岩)이 보인다.
마치 부산의 오륙도처럼, 보이는 바위는 두 개 뿐이지만 바짝 다가서면 세 개다. 막내 선녀는 풀이 한 포기도 자라지 않은 벌거숭이다. 세 선녀 중 가장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샀단다.
바위에 뚫린 두 개의 동굴 사이로 파도가 하얗게 일렁이는, 옛날 해적들의 소굴이었다는 관음쌍굴이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비경이다.
갈매기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바닷물과 바람 자체를 음미하는 것도 충분히 즐겁다. 도동에서 출발해 사동-통구미-태하-공암-삼선암-저동을 2시간에 걸쳐 도는 코스로 뱃삯은 1만 3,000원이다.
▼뭍으로 버스타고 돌기
지난해 9월 26일 총 39.8㎞의 일주도로가 개통되었다. 내수전에서 섬목까지의 4.4㎞만 제외하고는 몽땅 섬을 돌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초 한 퀴즈프로그램에서 나왔던 문제, “울릉도에 신호등이 있을까” 그때만 해도 정답은 ‘없다’였다. 하지만 서면의 구암에서 태하까지의 신도로에는 신호등에 중앙차선도 있다.
도로사정 열악하기로 소문난 울릉도에서 실로 놀라운 변화다. 그래서인지 최근 버스를 타고 일주도로를 도는 육상관광이 부쩍 늘었다. 서너 시간 정도 걸리며 비용은 1만 5,000원 수준이다.
사자암과 만물상, 코끼리바위 등 배를 타고 만났던 울릉도의 명물을 다시 만난다. 하지만 중간중간 하차할 때, 이곳의 가슴시린 물빛을 오히려 유람선을 탈 때보다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에메랄드와 비취, 사파이어빛이 묘하게 섞여 사람을 매료시키는 색깔이다. 게다가 10m 깊이의 자갈돌도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전국에서 시야가 가장 좋아 스쿠버다이버들이 선호한다는 이곳의 수중환경을 짐작케 한다.
도동에서 버스로 25분 정도 걸리는 남양 몽돌해수욕장. 매끄럽고 몽글몽글한 돌멩이들이 맑고 푸른 물결에 이색적인 화음을 빚어낸다. 도동의 번잡함이 싫다면 이곳을 권할 만 하다.
자연이 빚어낸 이색적인 생김새에 사람들의 익살스런 상상력이 결합된 기암괴석들도 잔재미를 준다.
서면을 지날 때, ‘국수 한 그릇 먹고 가라’는 운전기사의 난데없는 능청에 눈을 들어보면 과연 국수를 썰어 놓은 듯 섬세한 주상절리를 자랑하는 ‘국수산’을 만날 수 있다.
어떤 강속구라도 받아낼 듯, 튼실하게 손을 벌린 모양새의 ‘글러브바위’, 거북등이 갈라진 틈새를 흰 석회로 메꿔 놓은 듯한 ‘멍게바위’도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
많이 좋아졌다지만 울릉도 산길은 여전히 악명이 높다. 울릉읍의 ‘88도로’는 1988년에 생겨서가 아니라,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두 번이 꼬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버스가 360° 회전하다시피 구불구불 올라간다. 차창밖으로 더덕, 부지깽이나물 등 한때 이 섬을 먹여 살렸던 고마운 식물들이 손을 흔든다.
‘한바퀴 둘러보는’ 버스투어만으로는 놓치는 곳이 많다. 태하등대에서 보는 시원한 바다전경, 저동 내수전 약수터부터의 트래킹 코스 등 숨은 보물이 그것이다.
버스투어를 통해 맘에 드는 곳을 찍은 다음 찬찬히 음미하는 것도 진정한 울릉도를 느끼는 한 방법이다.
산자락이 포근하게 불빛을 품어 안은 듯한 도동항의 야경. 드문드문 보이는 오징어배의 불빛이 몽환적이다.
■가는길
울릉도 관광이 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멀고 험한 뱃길이다. 변화무쌍한 기후로 뱃길은 여전히 순탄치 않지만 시간은 대폭 단축됐다.
쾌속선 한겨레 호를 타면 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 161㎞를 2시간 40여분만에 간다. 비교적 안락하지만 물 위를 날듯이 달리기 때문에 갑판도 없고, 창문을 열 수도 없어 뱃멀미가 문제다. 8월 25일까지 오전 10시, 오후 6시 하루 두 차례 운항한다. 대아고속(033)531-5891
포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 선플라워는 약 세 시간이 걸린다.
포항대아고속 (054)242-5114. 울릉도 현지에서 유람선관광은 울릉도 유람선협회(054-991-4468)를, 육로 버스관광은 울릉관광(054-791-0067)등을 이용할 수 있다.
승우여행사(02-720-8311)에서 매주 목요일, 대아여행사(02-514-6766)에서 매일 울릉도 답사상품을 판매한다.
■쉴 곳
평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서기가 힘들고, 대부분 재래식 여관이다. 육지의 ‘호텔’ 수준을 기대했다가는 크게 실망한다.
지역번호 054. 울릉호텔 (791-6611), 울릉비취호텔(791-2335) 등 호텔급은 8월 초순까지 90%이상 예약이 끝났다. 4인 1실 기준 하루 8만원선. 성우여관 (791-2540), 한일장여관(791-5515) 등의 여관은 성수기 3만원 선이다.
번잡한 도동을 벗어나면 사동의 울릉황토방모텔 (791-0098), 일출을 볼 수 있는 저동의 비둘기모텔(791-7090) 등이 있다. 저동 고바우민박(791-3264)등은 따뜻한 환대로 정평이 높다. 북면의 추산쪽에 고급 민박인 ‘추산일가’(791-7788)도 있다.
■먹을 것
울릉도를 다녀 온 사람들이 종종 ‘먹을 게 부실하다’는 불평을 한다. 상당수 여관이 숙박에 부실한 식사를 ‘끼워’ 강매하면서 생긴 고질병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일부에서는 담합을 자제하는 등 차츰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음식은 약소불고기. 이 섬에서만 자생하는 600여종의 약초를 먹고 자라 육질이 연하고 고소하다.
지역번호 054. 암소한마리(791-4440) 등. 손바닥만한 튼실한 홍합으로 지은 ‘홍합밥’은 도시 한정식집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다.
보배식당(791-2683), 평화촌(791-1613)등. 부지깽이, 참고비 등 무공해 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도 별미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바라보며 먹으면 더 맛있다. 산마을식당(791-4643)등.
■알고가면 100배 더 재미있다
성인봉에서 구름을 마시면 또다른 울릉도를 느낄 수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구름이 바람을 따라 초고속으로 유영한다.
불과 20여초 사이에 바다가 출몰한다. 도동 쪽 하산길에서는 원시림을 만날 수 있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70˚가 넘는 아찔한 경사길.
너도밤나무, 섬피나무 등 희귀수종들이 경사면과 거의 직각을 이루며 빽빽히 솟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 쳐다보면 눈이 아리다.
끝을 알 수 없는 원시림의 생명력이 몸을 절벽 아래로 끌어내리는 듯 하다. 정상 높이는 984m. 거의 해수면에 인접한 도동에서부터 올라갈 수도 있지만 해발 340m의 나리분지에서 가는 게 좀 더 수월하다. 등산로가 잘 닦였다고는 하지만 능선보다는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는 길이 많아 숨이 가쁘다.
가벼운 산책으로도 울릉도를 체험할 수 있다. 지난해 도동부두 좌측 해안을 따라 행남등대까지 개설된 1시간 30분 코스의 해안산책로가 그것이다.
자연친화적인 나무울타리를 따라 해안절벽의 측면을 타고 가며 바닷물을 밟는다. 맑고 푸른 물결 사이로 발간 산호초가 내다보인다. 기암괴석 틈새에 고인 듯 일렁이는 물결이 동해의 엄청난 에너지를 감지케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도동의 망향봉에 오르면 울릉 8경의 하나로 꼽히는 ‘저동어화’(苧洞魚花)를 감상할 수 있다.
꿈을 꾸는 듯, 몽롱하게 떠있는 불빛은 울릉도 경제를 지탱하는 저동 오징어잡이 배들이다. 오징어축제가 벌어지는 8월 하순부터 이 불빛이 오각형의 섬을 둘러싸는 비경을 볼 수 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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