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2,3학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시대에 따라 편향되게 기술된 것은 역사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우거(愚擧)다. 지나간 정권의 일은 공과(功過)를 두루 언급한 반면, 현 정권은 치적 중심의 기술로 일관됐다는 일반의 평가가 자화자찬이 지나쳤음을 입증해 준다. 현재의 정권을 추켜세우고 전 정권을 폄하하는 교과서가 용인된다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교과서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우리는 역사 기술의 공정성에 관한 한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자랑스런 전통을 갖고 있다. 세계 기록문화 유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한 시대가 지나간 뒤에야 전대의 일을 평가하고 기술하는 철칙 아래 이루어졌다. 왕이 죽으면 실록청이 개설되어 가장 공정하게 기술된 사초(史草)를 선별해 두 번 세 번 심의하고, 이 과정이 끝난 뒤 가장 문장에 능한 사람이 일관성 있게 정리해 인쇄 과정으로 넘겼다.
이렇게 기록된 문서는 왕도 열람할 수 없도록 엄격한 제도로 보호되었다. 선왕의 기록에 관한 권력의 용훼(容喙)를 막기 위한 제도였다. 이토록 철저한 장치 때문에 귀찮은 간언을 받는 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는 기록까지 살아남았을 정도로, 실록에는 공정하고 기개 있는 역사의식이 살아있다.
그런데 지금 역사교과서 기술과 검정에 그런 원칙이 사라지고 없으니 한국 역사교육의 시곗바늘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정부가 검정하는 현대사 책을 쓰라고 하면 현정권에 관한 일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사람이 있을까. 검정이란 통과절차를 의식해 아무래도 권력자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약점이다. 현대사 교과서에서 현 정권에 관한 사항은 제외하는 원칙을 세워, 다시는 이런 우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화 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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