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한 왕자가 독룡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났다. 왕자는 낮에는 돼지 껍질에 갇혀 있었으며 밤에만 수피를 벗을 수 있었다.‘밤을 입고서야 낮 속으로 나갔으며, 밤이 되었을 때에야 밤을 벗는’ 것이었다. 진리는 밤을 입어서 모든 것이 보이는 낮에 볼 수 없으며, 진리가 밤을 벗을 때는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밤이어서 볼 수 없다. 진리가 보이는 것은 낮과 밤이 자리를 바꾸는 한 때, 죽음의 한 순간일 것이다.
소설가 박상륭(62)씨가 소설집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문학동네 발행)를 펴냈다.
“한국 문단에서 그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는 평론가 고(故) 김현 등 4명 뿐일 것”이라는, 해독되지 않는 경전(經典)을 소설로 쓰는 작가의 네번째 소설집이다.
소설집의 긴 제목 ‘잠의 열매…’는 소설 제목으로도 쓰이지 않았고 작품 속에도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30년 가까운 캐나다 이민 생활 때문인지 다소 어색하게 들리는 구어(口語)로 박씨는 잠과 꿈을 말했다.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처럼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 알 수 없는 순간, 세계와 나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 소설집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이야기다.”
세계와 자아의 합일(合一)에 대한 추구는 그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 ‘七祖語論(칠조어론)’ 등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이 구도의 여정을 두고 박씨는 “결국 나는 평생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박씨의 소설은 여전히 난해하지만 새 작품집의 연작 ‘두 집 사이’는 상당히 소설적이다. 죽음을 앞둔 노인의 이야기인 이 연작들은 고되게 읽히긴 하지만 따라잡을만하다.
주술에 걸린 돼지 왕자 이야기 등이 실린 연작 ‘混紡(혼방)된 상상력의 한 형태’에 대해 박씨는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담을 빌렸다고 했다.
“인생의 목적은 다시는 고해(苦海)의 세상에 돌아오지 않기 위한 것이다. 윤회(輪廻)의 고리를 끊고 해탈(해탈)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해탈로 가는 험로에 놓여 있다. 내 소설은 그 험로를 그린 것이다.”
평론가 김윤식(명지대 석좌교수)씨는 “헤겔이 분류한 절대정신의 범주는 예술, 종교, 철학이며 이중 제일 낮은 단계가 예술인데 저질 예술의 한 종류인 문학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종교의 불씨를 빌려오는 것”이 박상륭씨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스스로 메시아콤플렉스가 있다고 고백한다. “나는 인간과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소설을 쓴다.” “나는 아홉 남매의 막내였다. 가난에 시달린 막둥이는 앓아 누운 어머니가 돌아가실까 싶은 두려움에 모친에게 지독하게 집착했다. 한편으로 언제나 모친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겹쳐졌다. 애증의 감정,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는 간절함이 종교로 이끌었다.”
우리는 모두 죽을 때까지 진리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살아가는 동안 진리에 닿기 위해 고뇌하고 신음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일찍이 해답을 알면서도 수없이 던지는 질문의 발자국이다. 박상륭씨의 소설 쓰기는 진리의 몸을 드러내기 위해 불을 밝히려는 고통스러운 모험 길에 놓여 있다.
공주 앞에 불을 환하게 비춰서 돼지 껍질을 벗은 왕자의 육체를 보여야 하는데, 불은 자꾸만 꺼진다. 아, 어떻게 공주를 구해낼 것인가.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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