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구로부터 “한국엔 30대를 위한 문화가 없다”거나 “즐겨볼 만한 TV 프로그램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 때 나는 20대였고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30대의 문턱을 넘어서고 나니 그 때 들었던 말이 자주 생각나곤 난다.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는 한국의 TV 프로그램은 대부분 오락 프로그램인데 모두 10대와 20대를 위한 것이다.
주된 시청자를 청소년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인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 역시 다 그 또래들이다. 아이들의 장래희망도 판사, 교수, 대통령, 과학자, 변호사에서 연예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구구단을 외자’와 같은 프로그램만 보아도 중고생의 꿈이 왜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공부를 안 해도 얼굴만 예쁘면 연예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오락 프로그램 역시 저급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TV만 보면 한국의 30대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 ‘윤도현의 러브 레터’가 30대를 위한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일요일 밤 12시가 넘어야 방송된다.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할 이들이 늦게까지 TV 앞에 앉아있을 수 있을까. 미사리에 30대를 위한 라이브 까페들이 모여 있다고 하지만 인구 1,000만이 넘는 대도시 서울에서 30대들의 문화 공간이 변두리 구석으로 밀려난 것만 같아 씁쓸하다.
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가도 10~20대 연예인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이 대부분이어서 내가 사 입기가 민망한 경우가 많다.
물론 문화란 오락이나 음악, 패션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오락 프로그램만으로 가득 차 있는 한국의 TV 프라임 타임 편성을 보면 마치 한국의 문화는 오락, 음악, 패션으로 한정되는 것 같다.
그것도 10~20대의 것으로 말이다. 한국의 대표 문화는 TV 오락 프로그램인 것 같다. 이런 프로그램만을 보고 자라난 중고생이 30대가 되면 어떤 사람이 될까.
여러 친구들이 종종 한숨을 내쉬며 “나이든 걸 느낀다”거나 혹은 “늙었다”고 말한다. 30대를 위한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30대의 시청자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안나 파라돕스카 폴란드인 서울대 국어교육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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