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4강’의 장밋빛 전망에 한껏 고무된 채 맞이한 월드컵 이후 1개월간 경제 성적표는 암울했다. 잇따르는 미국 회계 부정 사건에 전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지면서 주가는 700선 아래로 내려 앉았고, 환율은 급등락을 거듭하며 요동을 쳤다.월드컵 이전만 해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기업들의 향후 경기전망치(BSI) 역시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둔화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과연 ‘월드컵 효과’는 실종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월드컵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은 아닌 만큼 경기 사이클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며 “월드컵의 성과를 경제적 효과로 연결시키려는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수출증대 단기효과 미미
'IT강국'등 집중·선택 통해 고급시장 경쟁력 키워야
▲ ‘단기 효과’는 없었다
KOTAR가 최근 월드컵 전후 한국에 대한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보통 이상으로 알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월드컵 이전인 5월 63%에서 7월 73%로 10%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미지 개선 정도를 나타내는 국가 이미지 평점은 같은 기간 77.2점에서 78.4점으로 1.2포인트 개선되는데 그쳤다.
KOTRA 관계자는 “월드컵 기간 중의 국내외 열띤 분위기에 비해 전체적인 국가 이미지 개선 폭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이는 월드컵이 일과성 행사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지도 상승 → 국가 이미지 개선 →수출 증대 등 경제 효과’의 선순환에 대한 단기적인 기대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월드컵이 국가신용등급 제고나 외자유치에 기여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지만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며 “월드컵이 가져다 준 무형의 자산을 향후 정부와 기업들이 잘 활용할 때 비로소 구체적인 경제적 성과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선택과 집중을
월드컵 효과를 경제적 성과로 연결짓기 위한 관건은 결국 선택과 집중이다. 마케팅의 대상을 얼마나 제대로 포착해내고 또 얼마나 차별화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이 지향해야 할 유력한 국가 브랜드로 ‘정보기술(IT) 강국’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기업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4.3%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국내 IT산업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포스트 월드컵의 화두는 결국 국가 브랜드 마케팅”이라며 “향후 국가 브랜드로 역동성과 IT 강국 등을 부각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지속적인 마케팅도 중요하다. 월드컵 공식 스폰서인 KT와 현대자동차는 각각 5조원 가량의 월드컵 마케팅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붉은 악마’를 동원한 SK텔레콤 등 비후원사들도 짭짤한 광고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월드컵으로 끌어 올려진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과정.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申鉉岩) 수석연구원은 “더 이상 가격으로만 승부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브랜드와 품질 향상 등 고급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선택과 집중, 그리고 차별화가 이뤄질 때 월드컵의 경제적 성과도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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