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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 총리서리 청문회 /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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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 총리서리 청문회 / 일문일답

입력
200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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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땅 투기 의혹_거주자가 아니면 농지를 살 수 없는 만큼 농지개혁법 위반이다.

“농지는 없었다.”

_노인복지시설 설립 계획이 48억원 공탁금 때문에 무산됐다고 해명했지만 양주군청에 확인해 보니 공탁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어떤 신청서도 낸 적도 없는데 이는 설립할 시도가 없었다는 것 아닌가.

“신고서가 접수 안됐을 뿐이다. 내일 나올 증인이 큰 가방에 서류를 가지고 다니며 준비를 했다. 이상을 가지고 한 것인데 투기로 모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_1994년 복지재단 중단 이후 엄청난 시세 차익을 올렸다는 보도도 있다.

“전혀 아닌 것 같다. 여러 번 체크 했는데 실 거래가가 2배 정도 올랐다. 14년 전 땅인데 투기 목적이겠는가. 투기 목적으로 사면 6명이 한 이름으로 사지 않는다.”

_당시 복지재단 절차를 진행하면서 현금도 출연했다는데.

“5,000만원씩 했다. 영양학, 정신의학, 보건 교육하는 사람, 저는 신학을 하기 때문에 모두 아담한 교회를 짓고 노인 복지를 돌보자는 이상향이었다.

재단을 하려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돈이 들어 땅을 팔아 사업을 진행하려 했다. 그런데 보안림이라 해서 누가 사지도 않아 설립이 중단되면서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아파트 개조

_살고 있는 집이 호화주택, 불법개조라는 지적을 받고 있고, 재산세를 내지 않기 위해 출입문 2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48평짜리 아파트가 왜 두 채나 필요한가.

“목동에는 내방이 없었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같이 모셨다.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시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싶어 방 2개 짜리를 찾았다.

15분 거리 내에는 이런 집이 없었다. 목동은 평당 1,000만원이었는데 이 집은 평당 500만원이었다. 전용면적 60평인데 말할 때 90평이어서 부담스러웠다. 문제가 돼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미국 영주권 취득

_1973년께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나.

“사실이다.”

_그때는 유신 직후여서 미국 국적을 요청해 망명을 하는 붐이 일었다. 미 영주권 취득은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어 그런 것 아닌가.

“아니다. 73년 아이가 태어났는데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내가 직장을 갖고 대출을 받기 위해서였다.”

_쉽게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하려 한 사람은 총리의 자격이 없다.

“77년 귀국당시 유신 말기였는데 국내 상황이 심각했다. 미국 교수들도 가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자기나라에서 살지 못하면 살 곳이 없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_영주권 취득을 처음엔 부인하지 않았나.

“영주권 취득사실을 부인한 적은 없다. 직원들의 착오라고 생각한다. 미국 영주권은 1년에 한번 미국을 여행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되는데 귀국 후 여행을 하지 않아 소멸됐다.”

■학력기재 의혹

_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고 언론에 보도됐을 때 이상하지 않았나.

“당혹스럽다. 어느 회식 자리에서 ‘장 선생 프린스턴 대학원 나오셨죠’라는 질문에 ‘아니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나왔어요’라고 정정했다.”

_언론에 시정을 요구했나.

“원고가 왔을 때는 분명히 시정했다.”

_총리 지명에는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 놀라운 학력이 작용한 것 아닌가.

“프린스턴대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은 각기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다. 프린스턴대 출신이 아니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다.”

_한국학술진흥재단에 출신학교인 프린스턴 신학대가 아닌 프린스턴대에서 학위를 땄다고 신고했다.

“나는 안 했다. 처음 듣는다.”

_조교나 비서가 한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많다. 비서관 4명에게 프린스턴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대의 차이를 모르냐고 물었더니 2명이 모른다고 했다.”

_신고서에 본인 날인까지 돼있다.

“안 좋은 관행이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로 문서가 나갈 때는 비서가 한다.”

■이희호 여사와의 관계

_총리서리 지명 전 이희호 여사로부터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나.

“아니다.”

_이 여사가 YWCA 총무로 있을 때 알고 지냈나.

“사실이다. 그러나 공적인 관계였지 사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이 여사 지위가 달라져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_현정부 들어 이화여대 출신들이 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등을 통해 공직 인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혹이 있다.

“이대 출신이 사회에 많이 진출하는 데 대해 눈치가 곱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 이대가 여성교육을 독점했고, 이대 출신자가 14만 명이 넘는다.”

_‘사랑의 친구들’ 이사로 있으면서 이희호 여사와 운영을 협의했나.

“그런 일 없다.”

_‘사랑의 친구들’ 이사 17명 중 9명이 정부 요직에 있다.

“‘사랑의 친구들’의 이사와 고문은 한국의 모든 인사를 총망라할 정도로 광범위하다. 나는 바빠서 3번 정도 나간 것으로 기억한다.”

_‘사랑의 친구들’의 최초 발기인으로 아태재단에서 문제가 됐던 이수동씨가 있는데 총리 인준안 통과 시 ‘사랑의 친구들’을 전면 감사할 용의는.

“아태재단과 ‘사랑의 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모르므로 답변할 수 없다.”

■학내 이력

_이화여대에서 주5일 근무제를 추진했다는데.

“노조가 몇 년간 요청해왔다. 노조협상이 난항에 부딪혀 다른 대학도 5일 근무제를 하느냐 알아보라고 한 결과 많은 대학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또 어떤 불편이 있느냐고 조사를 시켰는데 학업에 지장이 없고 난방비 등 3억원이 절약된다고 해서 도입했다.”

_효과가 있었나.

“미래지향적인 조치를 했다고 본다.”

_친일행각을 한 김활란씨를 ‘한국이 낳은 세계적 지도자’라고 말한 적이 있나.

“있다. 김활란씨가 이대를 키운 공이 있어 친일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터부시돼 왔다. 그러나 김활란상 제정을 위한 심포지엄 때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친일 비판론자들도 참석시켰다.

결국 학교와 사회의 생각이 달라 상 제정을 유보했다. 하지만 김활란씨는 1920년 대에 세계로 진출한 세계화한 여성이었다.”

_김활란 상을 왜 제정했나.

"김활란씨는 여성교육자,민간외교가로서 근세사에서 가장 먼저 세계화한 인물이다.약점은 약점대로,비난할 것은 비난하면서 평가하자는 취지였다.

-김활란씨에 대한 평가는.

"그는 '학도병으로 나가라는 자신의 말로 인해 죄를 받아 실명할 것이고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친일부분에 대한 잘못을뉘으쳤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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