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과학’. 방송에서 하나를 제대로 해내기도 어려운데, 이 두 목표를 한꺼번에 만족시키겠다는 시도는 상당히 야심찬 기획이다.KBS2 TV ‘차인표의 블랙박스’(기획 최종을, 일요일 밤 10시)는 ‘과학 시사 다큐’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다.
두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서 ‘차인표의 블랙박스’는 시사적인 주제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전략을 택했다.
4월 방송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다루어온 주제는 다중인격, 성전환, 미확인비행물체(UFO), 비만증 등이었고 국내외의 사례와 이에 대한 연구 성과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8일 방송한 ‘야누스의 얼굴-연쇄살인범’은 2000년에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에서 출발했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기존 연구에 대한 조사, 심리학자 등 전문가의 분석, 그리고 뇌파 분석이나 쥐를 이용한 실험 등의 실증적인 방식을 밟아나갔다.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은 가설을 세우고, 기존 연구를 살펴보고, 몇 가지 실증적 실험을 통해서 가설을 검증하는 과학적 학술 논문의 형식을 닮아있다.
하지만 ‘차인표의 블랙박스’가 다루는 시사는 엄밀히 말하면 시의성 있는 주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비정상적인 현상들.
‘추적 60분’(KBS2)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MBC) ‘그것이 알고 싶다’(SBS) 등의 시사프로그램과 비교하면 내용은 ‘옛 것’이다.
특정 사건과 관련된 현상을 나열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유사한 사례를 모으고 공통된 원인을 찾아나가는 실증 과학의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과학도 특정 영역에 치우치고 있다.
인지심리학적 분석에 치중하면서 다중인격이나 연쇄살인 등 비정상적 행위를 유발시키는 주요 원인이 유아시절의 학대 경험이라고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가 많다.
‘차인표의 블랙박스’가 여타의 시사프로그램과 차별화할 수 있는 덕목은 ‘시사’보다는 ‘과학’이다.
하지만 과학적 접근이 보다 다각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떠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똑같은 가설과 결론으로 제자리만 맴돌게 될 것이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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