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경제의 정상화를 위한 시도어느 시대, 어느 국가이건 지도자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자신의 권력을 가능한 한 오래도록 강력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예외가 아니며, 북한의 ‘체제생존’이라는 최고의 목표는 김 위원장의 권력유지와 동의어이다.
그러면 김 위원장의 권력유지를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경제의 회생이다. 대내적인 정치, 사회, 군사의 안정은 확보되고 있으나 경제만은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북한의 국가적 슬로건으로 등장하고 있는 강성대국 건설도 정치, 군사, 사상의 강국은 이루었으니 경제강국만 이루면 된다는 주장이다.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노후된 생산설비를 현대화하고 원자재를 필요한 만큼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나, 자체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북한은 외부의 지원 및 투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수년전부터 북한이 외교정책의 핵심과제로 대미관계의 정상화를 설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북미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남북관계의 지나친 진전은 체제붕괴와 그에 따른 흡수통일의 우려가 있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 주저할 수도 없다. 더 이상 경제시스템이 무너지기 전에 독자적으로라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최근 경제관련 조치의 배경이다. 가격 및 환율인상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거대해진 비공식부문의 경제활동을 공식부문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이다. 비공식부문과 공식부문의 가격이 같다면 비공식부분은 자연스레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격 및 환율인상은 경제 내에 사장되어 있거나 비공식부문에서 사용되던 북한 원화나 외화를 공식부문으로 흡수하여 자본을 자체적으로 동원하겠다는 목적도 지니고 있다. 가격인상은 세입의 확대로 이어져 임금을 인상해주기 위한 재정의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다.
임금인상은 가격인상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그만큼 노동 인센티브를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다. 게다가 임금인상과 더불어 이번 조치로 공장이나 기업의 이익에 따라 분배 몫이 영향을 받게 되었으므로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인센티브는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노력동원 운동이다. 천리마운동과 같은 지난날의 노력 동원운동이 노동시간 연장의 형태였던 반면 이번 조치는 생산능률의 증가를 추가하는 형태인 것이다. 이러한 인센티브의 제고는 생산증가로 연결되어 물자부족 현상을 해결하는 동시에 공식부문의 경제활동을 정상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결국 이번 조치는 계획경제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를 향한 개혁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다소 이르다. 김 위원장이 권력기반의 이론적 토대인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그것도 자발적으로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향후 북한은 대외경제관계를 확대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번 조치만으로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조치의 성공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외부지원은 절실하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북한은 남북관계에서도 다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이번 조치가 북한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북한 경제의 성장은 남북관계의 발전과 동북아 평화구도의 정착에 이바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도움은 따뜻함과 냉정함, 그리고 정정당당함이 분야별로 조화되어야 한다. 인도적 차원에서는 따뜻한 지원을 하고, 상업적 차원에서는 경제성에 입각해 냉정한 접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적인 차원에서는 정정당당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북한을 ‘스포일(spoil)’시키게 되고, 우리 내부적으로도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조동호(曺東昊) 한국개발연구원(KDI)북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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