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어떤 경제개혁이 벌어지고 있는가.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최근 북한의 경제와 관련한 일련의 르포 등 취재기를 여러 회로 나누어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의 대외적 창구라는 점에서 여기 드러난 변화는 현재 북한에서 진행 중인 현상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가격 기준은 쌀
국가가격제정국 관리는 “경제운영에서 실리를 보장하기 위한 핵심은 올바른 가격 설정으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물을 제 가치대로 계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가격의 설정은 기본 식량인 쌀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1946년부터 지켜온 원칙이다. 새로운 쌀 가격은 물과 전기, 비료 등에 투입되는 자금을 계산해 생산원가를 도출했다. 국제시장의 쌀 가격도 고려했고 국내 수요와 공급도 염두에 뒀다.
◆임금 결정과 임금 인상
쌀값을 기준으로 국가가격제정국에서 모든 생산품의 가격을 다시 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근로자들에게 필요한 생활비를 다시 계산했다. 쌀을 구입하고 주택비를 지불하는 등 새로운 가격에 따라 근로자들이 생활을 꾸리는 데 필요한 몫을 계산하고 노임을 정했다. 국가가 인민들의 생활을 책임적으로 돌보아 준다는 정책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노임을 정하는 데 있어서 생산을 늘여야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빨리 해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자우선 원칙이 적용됐다. 나라의 경제발전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며 어렵고 힘든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노임을 주도록 했다. 사회와 집단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노임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기본임금은 일반 노동자의 경우는 110원에서 2,000원으로, 광원 등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는 6,000원으로 올랐다. 임금 인상은 결과적으로 구매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임금을 생산성에 비례해 차등 지급토록 함으로써 물질적 인센티브를 주게 된다.
◆자율성과 인센티브 부과
공장과 기업소들은 이제 국가가 강조하는 실리보장의 원칙에 따라 벌어들인 수입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된다. 노동자들은 수익이 많으면 기본 노임보다 더 많은 액수를 받는다. 일한 만큼 분배받는다는 사회주의 배분 원칙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또 공장과 기업의 자율성을 높임으로써 공급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자율성을 높이면 책임성도 촉진돼 그동안 운영을 전적으로 국가에 의존해 온 공장과 기업소들이 자재 확보에서부터 판매를 통한 이윤창출까지 전 생산과정과 실적에 대해 책임을 갖게 됐다. 공장과 기업소는 시장에 생산품을 팔아 이윤을 만들고 노동자들은 생산성을 높여 자신들의 몫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조선신보는 기업 운영관리방법의 개선과 관련, “독립채산제의 올바른 실시를 위해 부족한 원료, 자재의 해결 등에서 아래 단위의 창발성을 보다 높이 발양시키는 방향에서 개선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동안 중앙정부가 생산계획을 세워 공장과 기업소에 하달하고 계획에 맞춰 자재를 공급하던 경영 시스템은 조금씩 힘을 잃어갈 것이다.
◆물가 결정
그동안 북한은 정부가 비싼 가격으로 원자재를 사들여 공장ㆍ기업소나 협동농장에 낮은 가격으로 공급함으로써 재화의 희소성이나 생산원가와는 상관없는 가격이 형성됐다. 이에 따라 국가의 재정부담만 늘어나고 재화가 수요와는 연계되지 않은 채 공급이 이뤄져 자원의 효율적 분배가 이뤄지지 못했다.
따라서 완벽한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은 아니지만 국가가 수요량과 공급량을 파악해 가격을 결정해 자원이 적재적소에 배분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가격 현실화를 통해 공급자가 정상적인 판로를 통해 물품을 판매하도록 함으로써 지하경제를 점차 양성화하겠다는 목적도 있다. 이에 따라 물가인상은 불가피하고 결국 이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도 동반상승하게 됐다.
김승일기자 ksi@hk.co.kr
■中 개혁·개방 초기와 비슷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는 중국 개혁ㆍ개방의 초기 단계와 비교된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집권 이후 개혁ㆍ개방 노선을 시작하면서 일부 지방에서 음성적으로 시행한 농가 생산 책임제를 공식 인정하고 ‘국가 가격’을 폐지해 물가를 현실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북한의 경제도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중반의 자연 재해가 겹치면서 급속히 붕괴돼 주민들의 경제생활 양상이 국가 경제의 공적 흐름보다는 비공식 부문에 의존하는 양상으로 변모했다. 특히 배급제의 붕괴로 암시장 거래가 만연하면서 국가의 가격 통제력이 완전히 상실되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돼 왔다.
이 같은 상황은 역으로 비대해진 사경제를 제어하고 국가의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처방을 요구했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북한의 지도자들이 택한 것이 바로 중국식 경제개혁 방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임금과 물가 인상, 실적에 따른 분배 강조 등은 중국이 개혁 개방의 초기에 단행한 일련의 조치들과 유사하다.
이와 관련 임동원(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 특보는 25일 “북한이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실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경제체제를 개선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이 취했던 개혁ㆍ개방 정책의 초기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고 밝혔다.
북한이 중국의 점(도시), 선(해안), 면(내륙) 3단계 개방론을 본 따 나진ㆍ선봉 경제특구, 개성공단 개방 등 특구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이나 중국쪽에서는 북한의 개혁은 중국의 개혁ㆍ개방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편다. 북한은 중국과 역사적인 조건이 다른 데다 중국보다 개방에 따른 체제 불안에 더욱 노출돼 있어 중국식 모델을 따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덩샤오핑이 문화혁명 시절 마오쩌둥(毛澤東)의 과오를 거울 삼아 새로운 경제 대안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었던 반면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승계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주체 경제’의 틀을 전면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처럼 실리추구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체 사상의 논리를 재해석함으로써 주체사상과 시장경제적 요소의 공존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했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각국분석/변화 인정, 효과엔 의문
북한의 경제개혁을 바라보는 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일단 중대한 변화의 신호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조치가 실질적인 효과를 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분석을 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5일 북한이 공식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시장경제 체제를 향한 정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꾀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평양 특파원의 보도를 인용해 “평양 거리에서 만난 한 여성이 월급이 20배 올랐지만 거주비와 쌀값을 내야 하기 때문에 미소를 짓지 않았다”며 북한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이른바 초과 이윤(렌트ㆍrent)을 지불하기 시작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잡지는 이같은 변화가 아직 개혁으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라도, 적어도 북한의 지도자들이 현재 직면한 심각한 문제를 뭔가 시장체제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잡지는 이에 설득력을 보태는 다른 징후로 ▲외국 기업에 제한적 문호 개방 ▲인터넷 카페 출현 ▲가까운 장래에 휴대전화 등장이 예상되는 점 등을 들었다.
북한과 밀접한 중국 베이징(北京)의 비즈니스 분석가 막심 코즐로프는 25일 “농업개혁 우선 등 북한 개혁의 시작이 중국과 비슷하지만 양국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북한 개혁은 중국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르피가로는 23일 북한이 쌀 배급제 폐지 등을 통해 1945년 김일성이 확립한 집단체제를 포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이의 구체화는 북한이 유사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쌀 배급제로 생존했던 북한이 이를 포기하면 대다수 주민들의 쌀 구입 애로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북한의 실험은 따뜻한 환영을 받을 가치가 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북한 정권의 성격에 대해 전세계 국가들은 계속해서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북한 경제 개혁의 역사/1980년대부터 외자유치 정책
북한 경제 개혁의 역사는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던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북한은 외자유치를 통한 중국의 경제발전이 가시화하자 1984년 외국기업의 북한 투자를 지원하는 ‘합영법’을 제정했다.
외국 기업들이 북한기업과 합작해 이윤을 배분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 기업 형태를 도입코자 한 취지였다. 하지만 이 정책은 북한의 무역대금 미결제 문제 등으로 인해 재일 조총련 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외국기업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권 붕괴후인 1991년 중국 경제특구 제도를 원용, 나진 선봉 지역을 경제특구로 선포한다. 당시 북한은 47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해 이 지역을 북_중_러시아를 잇는 삼각무역 중심지이자 금융중개 및 관광 등 국제교류의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북한은 1996년, 98년 두 차례 투자 유치 설명회를 열었으나 이 지역에 실제 투자된 외자는 고작 1억2,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경제특구의 실패는 김일성(金日成) 사망 후 북한내부의 불안정, 기초 인프라의 부족, 남한기업 참여 배제 등에서 기인했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1998년 헌법개정을 계기로 ‘강성대국’ ‘신사고’를 기치로 내걸면서 조심스럽게 경제 개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개정된 헌법에는 기업들의 원가절감과 수익 극대화를 꾀하는 독립채산제가 명문화했고, 식량부족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농민들에게 작목선택권을 부여하는 한편 개인경작용 뙈기밭을 확대했다.
또 1996년부터 10~25명 이었던 농업생산 및 분배단위(분조) 규모를 7~8명으로 줄이고, 초과생산량을 분조원들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장점을 도입하기 위해 1997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자본주의 경제강좌가 신설됐고, 기업의 효율성 진작을 위해 인센티브제도가 강화되고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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