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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함께 /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 강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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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함께 /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 강영안

입력
2002.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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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도의 취업 부진과 인문학 외면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인문학 몰락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에는 인문학은 문제가 없는데 세상이 그 가치를 몰라준다는 불평도 깔려 있는 것 같다.하지만 강영안(姜榮安ㆍ50)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생각이 다르다. 현대 인문학은 그 자체에 위기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그런 생각을 모아 ‘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소나무 발행)을 출판했다. 이 책은 이 같은 주장에 보태 플라톤 데카르트 등 철학자 이야기와 각종 인문학 사조, 근대지식 이념, 인문학에서 텍스트의 역할 등을 찬찬히 다루면서 현대 인문학의 위기 원인을 진단하고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강교수는 현대 인문학의 위기가 ‘주관성의 상실’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원래 주관적 학문입니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거는 기대도 그 같은 주관성이지요. 하지만 현대 인문학에는 주관성이 없습니다.”

주관성이란 무엇일까. “배우자를 고른다고 합시다. 선호하는 배우자가 다 다를 겁니다. 잘 생긴 사람, 돈 많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 성격 좋은 사람, 건강한 사람…누가 가장 좋은 배우자라는 정답은 없습니다. 자기와 얼마나 잘 어울릴지 등만 충분히 고려해 선택했다면 누가 탓하겠습니까. 주관성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인문학은 그런 과정에서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이 주관성을 잃은 것은 17세기 초 데카르트부터다. 당시 유럽은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되고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했던 불확실성의 사회였다. 그때 데카르트는 확실성을 추구하면서 기존 인문학을 의심한다. 그가 보기에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처럼 소중한 경험이기는 하지만 현재 사정을 등한시하며 철학은 의견은 다양해도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는 없었다. 데카르트는 결국 수학에 눈을 돌린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인문학에 수학의 객관성을 도입했고 불확실한 그 시대의 인문학자들은 그를 추종했다. 그 뒤 실증주의까지 더해지면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지식, 즉 객관성의 지식이 강조됐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세상이다. 하나의 답이 존재하는 세상은 아니다. 이런 세상은 인문학 원래의 성격을 요구한다. 애매하고 모호한 세상 속에서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인문학은 객관성에 매몰돼 있다.

탈출구는 없을까. 강교수는 “인문학은 텍스트를 통해 공부하는 학문”이라며 책 읽는 방법의 변화를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주자(朱子)의 독서법을 소개한다. 주자는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편견을 버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내용을 질문하고 적용하고 반성하면서 읽으라고 한다. 내용을 머리 속에만 간직하지 말고 몸으로 실천하라고 일러준다. 강교수는 이를 마음과 몸이 함께 하는, 주관성을 기르는데 유용한 독서법이라고 평가한다.

주자식 책 읽기를 통해 주관성과 판단능력을 기르면 취업부진 같은 외적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교수는 믿는다. 강교수는 인문학자들이 학생들에게 인문학의 원래 모습을 제대로 가르치고 인문학의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서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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