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부흥의 공예/이데카와 나오키 지음ㆍ정희균 옮김/학고재 발행ㆍ1만5,000원“산을 의지하고 있는 집, 집을 보호하는 산, 여기에는 사람과 자연이 서로 끌어안고 있다…이렇게도 신기하며 아름다운 장면이 이 세상에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조선은 금강산으로 유명하나 목포는 유달산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공예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ㆍ1889~1961)는 1938년 쓴 ‘전라기행’에서 유달산을 조선 제일의 명승지 금강산에 견주었다. 그러나 그가 감탄해 마지 않던 유달산의 집이란, 목포의 발전으로 산으로 밀려 올라간 달동네에 불과했으며 그곳 사람들은 열악한 급수시설, 비위생적 환경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야나기의 눈에는 그러나, 그 사람들의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풍광이 더 중요하고 의미 있었던 것이다.
야나기는 세계적인 미술학자이자 공예전문가. 특히 조선 공예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일제의 조선 침략을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조선 공예에 주목한 최초의 인물인데다 조선 공예를 이해하고 높이 평가했으며 우리 공예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일본의 공예 연구가 이데카와 나오키(出川直樹ㆍ62)는 야나기의 생각이 인간을 외면하는 반인간적 이론이라 비판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인간 부흥의 공예’에서 드러냈다. 1997년 출판된 이 책은 대가의 이론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에 따르면 야나기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공예의 아름다움도 깨달을 수 없다고 보았다. 또 이름없는 민중이나 공인은 작위나 미의식 없이, 즉 아무런 생각 없이 천재 작가의 견본 작품을 따라 반복해 만들다 보면 절로 아름다움을 깨닫고 표현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민중은 그저 바보 같은 상태에서 공예를 만들었고 공예에 대한 미의식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대로라면 공예가 주인공이 되고, 그것을 만든 인간은 주변 요소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이데카와의 입장은 단호하다. 야나기가 민중의 전통과 기술, 거기에 포함되는 창의와 미의식을 간과했으며 공예가 오랜 세월에 걸친 민중의 기술을 바탕으로 발달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천재 작가도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민중이 이룩한 전통과 기술 위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야나기가 그토록 관심을 가졌던 조선 공예에 대해서도 이데카와는 생각이 다르다. 야나기는 조선 공예에는 곡선과 흰색이 많으며 거기에서 비애감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공예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쳐 문외한조차 별 저항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인은 외세의 침략과 탄압을 많이 받은 불쌍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데카와는 야나기의 주장이 근거없는 선입견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한다. 야나기는 민가의 지붕, 신발의 코부분에서 조선 공예의 곡선미를 발견했다고 하나 그런 곡선은 일본, 중국에도 존재한다. 야나기가 상(喪)의 색인 흰색이 조선 공예에 유독 많다는 점을 들어 조선 민중이 비애감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흰색에 매달렸다고 하지만, 이데카와는 조선에 푸른 색 발색 재료가 거의 없었고 특히 자기는 제사 지낼 때 사용되기 때문에 화려한 색과 무늬를 집어넣을 수 없어 흰색이 많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데카와는 농악이나 가면극 등을 예로 들면서 조선 민중에게 밝고 해학적인 부분도 많았으며 따라서 비애를 조선 정서로 단정짓는 것도 무리라고 지적한다. 이 역시 야나기가 공예를 민중 현실과 유리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은 기계에 의한 공예의 대량 생산과 합성수지 등 인공 소재, 그것이 가져올 공예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담고 있지만 실증적 해석을 통한 야나기 비판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을 통해 공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들고 향유하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이 책은 공예라는 한정된 부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 관심이 적은 사람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공예, 나아가 예술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은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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