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인간배아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시안을 발표했다.의료ㆍ생명공학계 일부에선 질병치료와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환영하고 나섰지만 종교계와 일부 시민단체는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기독교생명윤리단체협의회의 김일수(金日秀 ㆍ고려대 교수) 위원장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마리아병원 부설) 박세필(朴世必) 소장의 입장을 들어봤다.
■배아연구는 생명경시 행위
“배아연구는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생명권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김일수 위원장은 우리 법조계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된다고 보고 있으며 선진국의 법조계와 종교계, 심지어 의학계도 공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아단계 이후는 입법 조치가 돼 있지만 이전 단계인 배아는 법규정이 없어 보호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정부가 배아연구를 허용한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윤리적 부담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부여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14일이 안된 배아는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배아는 인간의 모든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생명체”라면서 “배아는 감각이 없으므로 생명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식물인간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인간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고 했다.
배아를 희생시켜 난치병 환자를 살리는 것이 선하게 보일지라도 비윤리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 배아연구가 허용되면 국내 의료ㆍ생명공학계가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혈통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배아연구를 가장한 인간복제 프로젝트가 횡행하고 기형아 출산 등의 부작용이 벌어진다는 것.
그는 인간 배아연구의 대안으로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할 것을 제시했다. 성체줄기세포는 근육, 뼈, 피부 같은 인간의 모든 신체기관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세포여서 인간배아와 동일한 용도로 사용가능하며 생명윤리 논쟁의 부담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심을 거스르며 빠른 길로 가는 것보다 더디지만 윤리를 지키면서 성과를 이루는 것이 지성인의 도리”라고 말했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배우연구는 생명존중행위
“언제까지 결론 없는 논쟁에 매달리다 소생 가능한 환자를 절망에 빠뜨려야 하는가.”
박세필 소장은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도 적출해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는 시대”라면서 “어차피 폐기처분할 배아를 난치병 환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생명존중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유사 이래 진행돼온 생명논쟁에 빠져들면 어떤 논의도 진전되지 못하며 과학과 의료 발전이 지체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비록 수정이 생명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인간 형태는 수정 후 14일이 지난 배아 단계에서부터 이뤄지므로 이 시점을 인간 형태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14일 이전의 배아를 연구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 시안도 불임치료 후 의무보존기간인 5년을 넘긴 잉여 배아 가운데 수정 후 14일 이내의 것을 이용한 의학적 연구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배아 연구를 인간복제 연구와 혼동하지 달라고 당부했다.
인간복제는 유전조작을 통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인간배아 연구는 건강증진과 난치병 치료를 위해 배아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클로네이드사의 인간복제 시도는 당연히 금지돼야 한다고 했다.
성체줄기세포는 연구용으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체줄기세포는 분열이 특정 방향으로 이미 진행된 상태여서 연구자가 목표로 하는 장기 세포계로 진행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의료 선진국에서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고 배아연구도 허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세필/마리아생명공학 연구소 소장
■인간배아ㆍ성체줄기세포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 착상을 거쳐 세포분열을 시작한 단계를 배아(胚芽)라고 하며 배아가 자라 태아(fetus)가 된다. 성체(成體)줄기세포란 근육, 뼈 같은 신체의 일부분을 형성하기 전단계 세포이며 인간의 혈액, 골수 등에서 채취해낸다.
현재 국내에선 배아연구에 대한 법적 처벌은 없으나 윤리ㆍ기술적 문제 때문에 연구가 활발하지 않다. 프랑스는 배아연구를 금지하고 있고 일본은 선별 허용, 미국은 관련 연방법을 논의중이다.
이민주기자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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