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의 마늘협상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이기호 대통령특보는 “세이프가드 연장불가에 대해 외교부로부터 보고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 정부 부처간에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였던 사안이 대통령 보고 없이 결정됐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애당초 이 문제는 마늘 재배지역을 지역구로 하는 유력 정치인들이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나서면서 일이 꼬인 측면이 있다. 외교부 관계자들의 말대로 5억 달러의 우리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려는 중국을 달래가며 어렵사리 협상을 진행한 것도 사실이다.
일의 진행이 그러했기에 “당시 세이프가드 연장불가는 중요 관심사가 아니어서 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장 얼마 안 있으면 마늘재배 농가들이 야단을 칠 것이 뻔한 일을 보고하지 않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보신주의 속에 ‘면피행정’에 익숙한 우리 관료들의 행태로 미루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평소 각 부처의 사안을 꼼꼼히 챙기기로 소문난 김대중 대통령이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만 그냥 넘어갔다는 것도 이상하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물러난 한덕수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늘협상을 둘러싼 각 부처간의 대립, 그리고 책임회피를 위한 공방 등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된다. “남은 임기 7개월 동안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김 대통령의 약속은 이번 일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철저히 가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그만 배려를 잘못했을 때 그 결과가 크게 번질 수 있다”는 김 대통령의 한마디로 이번 사태를 단순한 ‘발표 누락’으로 단락지으려는 청와대의 자세는 옳지 않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