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마늘협상 당시 긴급 수입제한 조치(세이프 가드) 연장 불가 방침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김성훈(金成勳) 전 농림부장관의 발언은 충격적이다.김 전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주무 부처 장관이 협상 내용을 모른 채 협상이 진행됐다는 셈이고,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도대체 누가 협상결과를 책임질 것인가 라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또 “경제장관회의에서 모든 협상 방침을 정했다”며 ‘총대’를 메고 경질된 한덕수(韓悳洙)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입장과 상반되는 것이어서 잠시 꺼졌던 책임자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이번 진위 논란을 쉽게 가리지 못하는 우리의 통상교섭 업무의 현주소다.
통상교섭본부의 한 관계자는 22일 “당시 교섭이 급박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부처간 협의는 주로 전화 통화를 통해 이뤄져 관련 기록이 풍부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전장관의 발언을 반박할 입장인 통상교섭본부로서도 김 전 장관의 발언의 진위를 문서로 증명하기 어렵다는 얘기로 들린다.
교섭본부의 다른 관계자는 “당시 협상 분위기는 중국이 핸드폰 등 5억 달러 상당의 우리 공산품에 가한 보복관세를 철회시키는 데 초점이 모아져 마늘의 세이프 가드 연장 철회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교섭본부가 세이프 가드 철회에 대해 농림부로부터 암묵적 동의를 얻은 것으로 보았다는 것으로 이는 관계부처가 확실한 상황 인식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반증으로도 해석된다.
그래서 벌써부터 관가에서는 감사원의 특감이 진행되더라도 관계자들의 항변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여론의 초점은 김 전장관과 한 전 본부장의 발언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접근은 정치적으로 적지않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이 시점에서 종결된 뒤 부처간의 입장을 일사분란하게 조정하고, 대외 교섭을 일관성있게 추진하기 위한 필요한 ‘시스템’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제2의 마늘 협상파동은 언제든 재현될 것이다.
이영섭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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