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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16)제3부(4)중간계급의 쇠퇴와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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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16)제3부(4)중간계급의 쇠퇴와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

입력
200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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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이 연일 곤두박질치면서 최근 들어 미국의 경제 위기론이 크게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1990년대 신경제 아래에서 미국은 이미 소득 불평등의 심화와 중간계급의 급격한 몰락으로 사회 붕괴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고등교육을 받은 화이트 칼라 관리직,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거 실직되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은 실현 가능하지 않은 과거의 신화로 치부되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 혹은 몰락으로 표현되는 미국의 중간계급의 쇠퇴 문제는 미국 경제 체제와 직결되어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중간계급의 쇠퇴는 20세기 후반 미국이 경험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가족 체제의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권 당시부터 미국의 노동시장은 구조적인 변화를 겪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산물로 노동시장이 유연화하면서 고용불안정이 증가했다. 여기에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축소로 빈곤층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신경제 하에서도 96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89년 수준의 소득 수준이 달성됐다. 그나마 가구 소득이 증가한 경우도 맞벌이하는 경우에 한정되었다. 나머지 절반의 가구는 끝내 89년 소득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고용불안과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

90년대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노동계급의 삶이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중간계급도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의 중간계급은 양적으로 크게 줄어들고 있으며, 이 계급의 삶도 대단히 불안정해졌다.

중간계급의 양적 축소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이나 기업의 해외 이전에 기인했다. 이전 미국의 대량 해고는 경기순환과 관련이 있지만, 90년대 들어서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가 꾸준히 증가했다.

GE, GM, IBM, 휴렛-팩커드, AT&T,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대기업들은 수만 명을 한꺼번에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주기적으로 해 왔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 실직자들은 실직 이전과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실직은 곧 바로 소득 불안정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경제가 확대하면서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지난 20년 동안 50개 주에서 알래스카와 노스다코타를 제외한 48개 주에서 부자와 빈자의 격차는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70년대 말부터 90년대 말까지 하위 20%의 소득은 21%나 줄어들었고, 상위 20%의 소득은 30%나 증가하였다. 부유한 20%의 가구 소득 전체가 나머지 80%의 가구 소득 전체와 거의 같게 되었다.

반면에 중간 60%의 소득계층이 차지하는 소득은 68년 53.0%에서 94년 47.3%로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미들 클래스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후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47년부터 68년까지 감소하다가 1968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90대 들어서는 급증해 94년의 지니계수(소득 누적백분율을 인구 누적백분율로 나눈 것으로 분포의 불평등도를 나타낸 수치)는 68년의 지니계수보다 무려 22.4% 더 높게 나타났다.

이제 미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되었으며, 부자와 빈자의 격차도 가장 큰 나라가 됐다.

■부채의 늪에 빠진 중간계급

미국 중간계급의 경제적 불안정은 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가계부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이 소비자 파산의 급증이다. 90년대에는 호황에도 불구하고 개인 파산이 급증했다.

미국 중간 계급의 위기는 바로 법원으로부터 소비자 파산을 선고받은 중간계급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변한다. 79년부터 97년 사이 법원에서 개인 파산을 선고받은 사람 수는 4배나 늘어났다.

96년에는 처음으로 개인 파산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그후 2년 만인 98년에는 140만 명이 파산선고를 받았다.

개인 파산의 주된 원인은 실직이다. 장기실업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실업의 경우에도 신용카드 빚은 물론 자동차 보험, 의료보험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위험은 크게 증가한다.

식료품까지 신용카드로 구입하는 미국사회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과도한 빚으로 인하여 개인 파산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하층민이 아니라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의사, 은행원, 사무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미국의 의료보험은 사보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이 없는 경우나 소득이 낮은 경우 보험에 들지 못하게 된다. 2001년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4,100만 명에 달하였다. 보험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노동계급뿐 아니라 중간계급의 비중도 적지 않다.

텍사스 주립 대학 사회학 교수인 설리반과 법학과 교수인 워렌, 웨스트부룩은 ‘취약한 중간계급(The Fragile Middle Class)’에서 미국 중간계급의 위기의 원인은 과잉 소비가 아니라 실직, 질병, 이혼과 같은 미국 경제와 사회 자체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중간계급 개인 파산자의 10분의 1 정도가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인 반면, 무려 3분의 2가 실직과 구직의 어려움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파산했다.

이혼도 개인 파산에 기여를 하고 있다. 이혼을 하는 경우 여성은 이혼 전에 비해서 경제적인 수준이 20% 정도 줄어들고, 남성은 3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 빚으로 인하여 이혼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빚으로 이혼하는 경우는 재혼도 힘들어 재정적인 파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혼한 부부의 절반 정도가 이혼하는 미국 사회에서 이혼은 흔한 일이지만, 그만큼 개인파산도 흔하게 만들었다.

■꿈을 잃어버린 미국

한 사회의 미래는 젊은 세대에 달려있다. 미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의 백인 젊은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제 노력을 하면 상승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않는다.

사회학자 마티나 모리스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 미국의 젊은이들의 90%가 자신들이 이전 세대보다 평생 동안 더 어렵게 살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중간계급의 생활수준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남성의 비율도 70년대에 비해서 4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군비를 증강하고, 호전적인 대외정책으로 강국을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재 미국의 뒷모습은 허망하다. 미국 사회의 버팀목이 되었던 중간계급이 쇠퇴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위기의 핵심은 점증하는 고용불안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소수의 부자들이 더 많은 부를 누리게 만들었지만, 반면에 중간계급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양극화하는 미국 사회에서 부자들은 새로운 자유를 얼마 동안 더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신광영(辛光永) 중앙대학교 교수ㆍ사회학

■아메리카 핸드북

몰락의 징후는 농후했지만 미국의 중간층은 지금껏 이를 알지 못했다. 미국 중간층의 표본인 30세 고졸 남자의 평균 연간수입은 2000년 2만 9,057달러로 인플레를 감안하면 74년에 비해 20% 감소했다.

‘미들 클래스 왕국’ 미국의 민주주의 성공 비결이 두터운 중간층임을 감안하면 이제는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2000년 9월 월스트리트 저널의 대기자 마이클 밀켄은 ‘풍요 속에서’라는 기사에서 소득 불균형이 지금까지 사회불안을 가져오지 않은 이유를 주식 등 자산 가치의 증가, 낮은 금리, 맞벌이의 증가 등 3가지로 들었다.

첫째 중간층은 뛰는 주가 때문에 줄어든 소득을 보지 못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재직 중에는 개인연금 산정으로, 퇴직 후에는 자산 신탁을 통해 대부분 주식 보유자가 됐다. 2000년 현재 미국의 가계는 금융자산의 56%를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11년 전인 89년 그 비율은 28%에 불과했다. 그런데 89년까지 25년 간 평균 상승률이 1% 안팎에 불과했던 다우지수 상승률이 이후 2000년까지 무려 20%가 올랐다. 임금이 줄었는데 주가를 보며 풍요로워졌다는 착각에 빠졌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낮은 은행 이자 때문에 물건을 사들이며 생활수준을 높였다. 80년대에는 1만 달러의 승용차를 20% 선금을 지급한 뒤 3년간 월 592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같은 승용차가 2만 5,000달러로 올랐는 데도 5년간 월 420달러만 지급하면 된다. 그 결과 개인파산자는 급증했다.

마지막으로 맞벌이 가구의 증대다. 미국은 신경제 하에서 5,000만 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했다고 자랑해 왔다. 그 결과 80년 2명이상 소득을 가진 가구가 5,300만 세대였던 것이 2000년에는 6,800만 세대로 무려 1,500만 가구가 늘어났다. 많은 사람이 버는 바람에 누리던 풍요도 잇따른 대량해고로 끝이 보이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미국 중간층을 “스스로를 미들 클래스로 부르던 노동자 계급”이라면서 “조만간 영국이나 독일의 노동자처럼 수당과 고용을 위해 단결해 싸워야 하는 계급임을 자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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