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투자신탁증권 서울 압구정지점. 1층에 들어서면 대형 시세판과 길다란 소파, 영업창구 등 여느 증권사 객장과 다를 게 없다.하지만 한층만 올라가면 특급호텔에 들어선 듯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80평 규모의 매장이 4개의 방과 복도로만 이뤄져 있다. 실내는 은은한 베이지색 카펫과 짙은 밤색 나무 등으로 호화롭게 꾸며졌다. 인테리어 비용만 2억원이 들었다.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빌딩 20층에 위치한 삼성증권 Fn아너스지점도 호텔 로비 같은 분위기다. 우선 엘리베이터를 내려서면 미소를 머금은 안내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시세판이나 계좌창구는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대신 고급스런 접견실과 첨단 보안장치를 갖춘 프리젠테이션룸 등이 들어섰다. 아무리 둘러봐도 증권사 지점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외국계 은행에서 시작된 ‘귀족 마케팅’이 증권사에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증권사간 수수료율 경쟁이 격화하는데다 은행들이 복합금융상품으로 증권사 영역을 넘보고 있어 수입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 증권사 객장 리모델링 붐
부자고객을 확보하려면 객장과 차별화한 고급스런 점포를 갖추는 게 필수. 삼성증권은 지난달 경기 분당지점을 ‘VIP 전략 점포’로 새롭게 단장했다.
객장과 시세판을 없애는 대신 금융상담을 위한 개별룸 12개와 VIP고객 전용룸을 만들었다. VIP고객에겐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PC를 제공하고 장이 열리기 전 전문가들이 투자상담을 해준다.
삼성증권은 내년까지 전국 107개 지점 가운데 절반 가까운 50개를 객장과 시세판이 없는 VIP점포로 단장할 계획이다. 현대ㆍ대우증권 등도 별도 상담실에서 예약을 받고 일반 재테크는 물론, 세금 상속 자녀유학 문제 등을 종합 상담하는 VIP지점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 억대손님 잡기 경쟁 치열
증권가의 VIP마케팅은 지난해 도입된 ‘랩 어카운트(Wrap Account)’가 핵심. 랩 어카운트는 자산관리사가 주식, 채권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 고객이 맡긴 돈을 종합 관리해주는 시스템이다. 와이즈랩(LG증권), 유퍼스트멤버스(현대증권), 플랜마스터(대우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랩 어카운트 상품은 개인자산 5,000만원이 넘어야 거래가 가능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고객이 억대손님이라고 한다. 삼성증권은 2,200여개 계좌의 1인당 평균 수탁고가 6억원이나 된다.
증권사들은 랩 어카운트 상품과는 별개로 고액 자산가를 위한 ‘프라이빗 뱅킹(PB) 점포’를 앞다퉈 개설하고 있다.
현재 1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를 목표로 한 PB센터는 골드넛멤버스(LG투자증권)를 비롯, S&I클럽(삼성증권), 리치그룹(현대그룹), 클래스1(대한투신증권), 마제스티클럽(동원증권), 다이너스티클럽(현대투신증권) 등 10여개가 넘는다. 대부분 강남권과 여의도, 광화문 등에 위치해 있다.
▶ 맞선주선ㆍ테마여행 등 서비스
VIP고객에겐 자산운용상담은 기본이며 골프부킹, 유서작성 및 보관, VIP고객 자녀간 맞선주선 등 각종 특별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증권은 지난달 VIP고객 500명을 초청, 강원 정선으로 테마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부자고객을 끌어들여 수입원을 다변화하지 못할 경우 생존마저 위협 받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면서 “앞으로 은행, 보험 등 업종을 불문하고 치열한 부자고객 확보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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