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어간다.경악감, 공포감으로 형성됐던 반테러에 대한 세계적 합의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단락을 보이고 미국의 반 테러 정책이 구체화됨에 따라 지역별 나라별로 다양한 영향과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국제 세력으로 등장을 꿈꿔왔던 유럽은 반테러 전쟁 이후 오히려 국제적 입지가 좁아졌다.
반테러 전쟁을 강력히 지지했던 초기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에 대한 우려는 심화되어왔다. 유럽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중동 사태 해결 방식, 군사적 방법에 의존한 테러 근절,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공공연한 축출 전략 등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또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포로에 대한 제네바 협약 적용의 예외 주장, 유엔 무시, 미국의 구미에 맞지 않는 국제기구 요원의 교체 등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유럽은 부시 대통령이 긴장된 국제 환경을 이용한 국내 정치적 입지의 강화를 꾀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일방주의를 통한 미 국익의 확보에 힘쓰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반테러 전쟁을 통해 대미 관계를 재정비하며 새로운 역할을 찾게 되었다.
냉전 시대의 핵심 주제였던 핵무기 문제를 종결 짓고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지역적(중앙아시아, 발칸, 발틱 및 남아시아)으로 미국이 유럽에서 구할 수 없는 협력 분야를 찾아냈다.
러시아와 미국관계는 이로써 더 이상 초강국 관계가 아니라 초강국과 지역국과의 관계로 변하고 있다.
미국과의 주요 정책 이슈는 러시아의 서방 편입,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공동 대처 노력, 반테러 전쟁 등이며, 불안한 중동 상황은 러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높였고, 또 중국의 안정된 체제 전환에 공통 관심을 갖게 했다.
중국도 초창기 국내 회교도 소수민족의 존재, 중앙아시아와의 인접성 등으로 테러 근절에 높은 관심을 표시했다.
중국은 다만 아시아와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전횡을 우려하고 있다. 동시에 반테러 전쟁으로 미군의 중앙아시아 주둔 등 중국포위 현상에도 불만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유엔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러시아, 중앙아시아 각국과 합의한 상하이 선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할 모색에 전전긍긍했던 일본은 테러 사태를 통해 진정한 ‘보통국가’로서의 역할을 찾으려 했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계획에의 참여,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등이 새로운 외교 과제로 제시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일본 내 집단적 자위권 발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테러라는 초 국경적 현상을 통해 지금까지 국가적 단위로 규정되던 적 개념의 한계를 벗어나 자위대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게 된 사실이다.
한편 반테러 전쟁은 약소국가의 분쟁에 새로운 양상을 불러 왔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반테러 전쟁 편승작전을 폈다.
아라파트 PLO의장의 친 테러그룹 성향을 앞세워 미국의 정책 방향을 주도하면서 자신들의 안보 이익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파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국 역시 아프가니스탄과의 인접성을 바탕으로 미국의 관심을 사려하고 있다.
반테러 전쟁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적 개념을 통해 국제사회에 새로운 관계와 과제를 던져주는 사례들이다.
이처럼 미국 반테러 전쟁의 영향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제 정치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가장 불확실한 사실은 반테러 전쟁이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인가 이다.
미 국내적 요인으로 경제 상황의 악화와 테러 중단이 오래 지속될 경우 부시 정권의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국제적으로 테러조직이 확실히 근절되거나 역으로 테러조직이 핵무기를 지닐 경우 반테러 전쟁에 다른 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또한 반테러 전쟁이 무고한 양민을 계속적으로 희생시키거나 지역분쟁을 정도 이상 악화시킬 경우 국제 사회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런 국제적 분위기를 적절히 읽어내면서 우리는 기계적인 대북 햇볕정책과 개입정책을 고수하는 한반도 중심적 사고를 탈피하고, 국제적 요인을 한반도에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융통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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