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북한강변.아름드리 소나무ㆍ전나무들이 송두리째 잘려나간 산등성이부터 시뻘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전원주택 택지조성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듯 산허리에는 ‘분양’이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고, 100여m 아래 새로 뚫린 2차선 아스팔트 길가에는 러브호텔, 강변에는 음식점ㆍ카페가 줄지어 늘어섰다.
북한강변 양쪽 어디서 바라봐도 푸른 숲은 간데 없고 잿빛 콘크리트 건물만 가득했다.
■ 신음하는 북한강변
수도권 2,000만 주민의 쉼터이자 허파인 북한강변이 각종 난개발로 죽어가고 있다. 남한강변 등에 이어 이번에는 손길이 닿지 않았던 북한강변 남쪽 지역이 집중적으로 파헤쳐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무분별한 전원주택 조성 붐은 환경과 경관을 파괴하는 최대 ‘공공의 적’. 강변이 음식ㆍ숙박업소 등에 선점되자 이제는 수천평씩 산을 깎아내고 짓는다.
문호리~수입리 1㎞구간에만 10~30동씩 신규 분양 중인 곳만 4~5군데에 이를 정도다. 수년 전만 해도 비포장 길로 인적조차 드물었던 곳이지만, 올 봄 86번 군도 개통에 힘입어 비경으로 알려진 수입천 최상류 지역까지 굴착공사가 한창이었다.
러브호텔도 ‘흉물’이기는 마찬가지. 가평군 외서면 삼회리에는 숙박업소로 보이는 듯한 건물 3채가 동시에 지어지는 등 아름다운 강변을 온통 공사장으로 전락시켰다.
1990년 34개에 불과했던 가평군 숙박업소는 북한강 난개발이 계속되면서 현재 100여개에 달하는 등 배 이상 급증했다.
무분별하게 늘어선 보트영업장, 카페 등도 무질서를 부추기고 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산과 강변이 단절돼 너구리 등 수변동물의 생태계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며 근심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사실상 대책은 없다
더 큰 문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개발은 주로 상수원보호구역 보다는 각종 규제가 덜한 수변구역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수변구역 대책은 팔당호상수원 보호를 위해 하수처리 규제 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자연경관 훼손을 막는 데는 솜방망이인 실정이다.
또 원주민은 800㎡(247평)이하 규모의 택지 조성을 할 수 있는 점을 악용, 차명으로 여러 개 필지를 허가받아 대형으로 개발하는 편법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환경부 정유순(鄭裕淳) 한강감시대장은 “허가 조항에 ‘현지인 입주’ 조건이 붙었지만 위장전입 등 교묘한 방법 앞에는 있으나마나”라고 혀를 내둘렀다.
세수 증대를 목적으로 한 지자체의 개발 정책도 한 몫 한다. 지난해 북한강변 등 팔당특별지역 7개 시ㆍ군의 택지개발 등을 위한 산림형질 변경 허가 면적은 모두 1,699건에 296만㎡(83만여평)에 달했다. 여의도(90만평)에 육박하는 면적이다.
정진성(鄭鎭星) 한강유역관리청장은 “현행 법과 제도로는 난개발을 막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며 “민간(내셔널 트러스트 등)과 정부가 난개발이 예상 또는 진행중인 지역 토지를 아예 사들이는 등의 근원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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