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이 얼마나 소중하고 축복 받은 날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여전히 부족합니다.”17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54주년 제헌절 기념식에서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을 향한 일종의 한탄의 의미가 담긴 말로 들렸다.
그러나 다시 둘러본 이날의 행사 현장. 헌법기관장들과 함께 식장에 자리잡은 국회의원들은 불과 30여 명에 불과했다.
‘독립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현 재적수가 259명이고 보면 박 의장의 말은 국회 스스로를 향한 한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나마 참석자들의 대부분이 각 당의 주요 당직자들이라 의무적으로 참석한 인물들이었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예전엔 아무리 적게 참석한 경우도 50~60명의 의원들은 왔었다”고 전했다.
의원들이 자신들의 ‘생일’인 제헌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각각의 이유로 외유를 떠난 의원 50여명은 이미 비난에 처해 있다. 또 적지 않은 수의 의원들은 이날 골프를 즐기느라 불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다. 이날 정치권에서 제헌절은 오히려 개헌 공방의 소재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등에서 쏟아지는 개헌론을 겨냥해 “헌법을 유린하는 정략적 개헌 음모에 분연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논평했다.
자민련도 논평을 통해 “개헌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민도 동감하는 만큼 정치권은 개헌논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며 내각제를 주장했다.
개헌의 정ㆍ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날의 행사는 ‘껍데기 기념식’으로 그치고 말았다.
박 의장은 “제헌절이 (국민들에게) 그저 하루 편히 쉬는 날로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의원들 스스로가 그렇지는 않은지 먼저 자성해볼 일이다.
고주희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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