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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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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쌀

입력
2002.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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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화폐처럼 쓰이던 시대가 오래지 않다.지금 장년층만 해도 도시에 나가 공부할 때 한 달에 쌀 닷 말이나 너 말을 내고 하숙생활을 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닷 말짜리 하숙이면 밥상에 가끔 계란 후라이가 올라올 정도로 반찬이 좋았고, 주인집 식구들의 대우도 좋았다.

너 말이면 채소밭이라 할 만큼 푸성귀 반찬뿐이었다.

방학이 끝나면 쌀자루를 메고 버스를 타는 일이 부끄럽고 번거로워, 돈 주고 하숙하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학생도 많았다.

■수학여행이나 소풍 때도 배낭에 쌀을 짊어지고 다녔다.

밥값 잠자리값을 그 쌀로 계산하였다. 의연금이나 성금을 걷을 때 돈이 없는 사람은 쌀로 대납하기도 했으며, 사친회비(등록금)를 쌀로 내는 학생도 있었다.

동네에 방물장수가 오면 시골 아낙네들은 쌀을 퍼주고 참빗도 사고 고무신도 샀다.

산신제나 단오축제 같은 동네 잔치가 열릴 때면 살림형편에 따라 쌀을 거두어 경비로 썼고, 이웃집에 혼사나 초상이 있을 때 쌀로 부조를 하기도 했다.

■쌀 팔아 등록금 내고 대학 다닌 사람들에게 모든 가치와 생각의 기준은 언제나 쌀이었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쌀 세 가마 값이 안 된다고 실망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값이 세상살이 초년병들이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기준이었다.

쌀 몇 가마에 연탄 몇 백장 들여놓으면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마음이 훈훈하였다.

돈이 있어도 쌀을 살 수 없던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쌀보다 귀한 건 없었다. 그러니 화폐기능을 한 것이다.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이라는 뉴스는 우리가 지금 어느 세상에 살고 있는지 헷갈리게 한다.

20여년 전까지 쌀을 수입해 먹고 살던 나라가 이제는 쌀이 남아 200만석을 사료로 써야 할 판이라 한다.

사료로 만들려면 가공비로 5,000억원이 소요되고, 가난한 나라에 거저 주자니 수송비가 많이 들어 고민이란다.

그런데도 굶어 죽어가는 북녘 동포들에게 주자는 논의는 금기사항이 되었다. 더 많이 가진 보수 우익의 반대 때문이다.

짐승에게 먹이느니 한 핏줄 동포에게 주자는 말이 친북한 빨간 딱지가 된 세상이 야속하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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