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쌀 농사도 이대로 가면 풍년이 예상된다.그러나 푸른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가을의 풍성한 결실에 대한 기대보다 지난해처럼 올해에도 쌀값이 폭락하는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밤잠을 설친다.
수확기 쌀값은 서둘러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지난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쌀 재고량이 10월 말에는 지난해 보다 390만석이 늘어난 1,380만석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적정 재고량의 2배에 달하는 양이다.
쌀 과잉 재고와 쌀값 하락의 일차적 책임은 쌀 수급조절에 실패한 양정 당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정 실패의 책임을 엄중히 따져 다시는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지만,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쌀 과잉재고 처리대책을 서두르는 일이다.
이대로 가면 저장할 창고가 모자라 수확기 쌀 수매에도 지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쌀을 비롯해 곡물의 과잉생산으로 고민하는 것은 비단 우리만은 아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모두에게 공통된 현상이다.
쌀 과잉재고는 다른 나라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국내외 식량원조, 사료용, 가공용 등으로 처분할 수 있다.
정부는 그 동안 가공용으로 100만석을 처분하였지만, 이 정도로는 현재의 과잉재고 처리에 턱없이 부족하다.
추가로 400만~500만석 정도는 처리해야 쌀 과잉 해소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료용과 해외식량원조로 처분할 수 밖에 없는데, 여기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사람이 먹는 쌀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느냐, 또 막대한 재정부담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 의견은 정서상으로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나 경제이론적으로 볼 때 올바른 것은 아니다.
우선 사료용 처분의 경우 ‘사람이 먹는 쌀’을 가축에 먹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가 보유한 쌀 가운데 1998~99년에 수매한 게 370만석이다.
이 고고미(古古米)는 무늬만 쌀이지 실제는 쌀이 아니다. 지금 우리 국민 가운데 이런 고고미는 거저 주어도 먹으려는 사람이 없다.
이미 쌀이 아닌 것을 장부상으로만 쌀이라고 우기면서 보관료(100만석 당 연간 82억원)만 물고 있다. 그러니 가축에게라도 먹이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현명한 처사이다.
해외원조나 사료용으로 처분하는 경우 100만석 당 2,500억~3,000억원 정도의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부담할 것이냐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재고처리 비용을 정부 재고미의 장부상의 판매원가를 기준으로 삼아 계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고고미는 전혀 수요가 없기 때문에 실제 판매원가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제로에 가깝다.
만약 쌀 도매상이라면 3년 전에 비록 가마당 13만원에 구입한 쌀이라 할 지라도 아직도 팔지 못하고 남은 것이 있다면 결손처분하고 창고비용이라도 절약할 것이다.
정부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욱이 결손처리는 양특회계 장부상의 문제일 뿐 추가 재정부담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우리는 이제 쌀 해외원조를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단순히 쌀의 과잉재고를 처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가 지난 날 다른 나라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해 우리 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는 2억1,200만 달러로 국민총생산(GNP)의 0.05%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유엔 권고 0.7% 수준에는 말할 나위 없고 OECD 평균 0.22%의 4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모든 정책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올 수확기 쌀값 폭락 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사료용 처분과 해외원조 등 쌀 과잉재고 처리방안을 지체 없이 수립하고 실시해야 한다.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농정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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